올 7월 시범사업 실시하는 국내 첫 ‘소아 호스피스’는…
말기 소아암·중증 질환에 걸린
아이들 위한 전문 치료·돌봄 시스템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2곳에 그쳐
입원형보다는 자문형·가정형 선호
소아 호스피스 완화의료 정착 위해
권역별 최소 1곳의 의료기관 있어야
생후 16개월인 유리(가명)는 에카르디증후군이라는 희귀난치병을 앓고 있다. 평균 8세 정도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선천성 기형 질환이다. 유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경기를하며 고비를 넘기고 있다.아빠(40)는“병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힘든 게 더 두렵다”고 했다.
유리 부모는 지난해 10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충남 예산 집에서 기차를 타고 상경해 서울대병원 소아 완화의료팀을 찾는다. 완화의료는 말기 환자의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증과 증상을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감정과 심리상태, 영적 영역까지 보듬어 주는 총체적 돌봄 서비스다.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미술·놀이치료사 등으로 꾸려진 전담 팀이 함께 고민하며 힘든 투병길에 동행이 돼준다. 유리네 가족도 매월 이곳에서 병간호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딸의 통증을 덜어줄 모르핀을 처방받아 돌아간다.
집이 있는 예산이나 인근 도시에는 이런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없다. 아빠는 “딸이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다.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고통 없이 편안하게 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부모는 유리와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고 마음 굳혔다. 아빠는 “의학적으로 치료가 힘들고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 주는 게 딸에게 최선일지 고심 끝에 결정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종양혈액과 최은석 전문간호사는 2년 전 세상을 떠난 한 소아암 말기 여고생의 일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뼈암(유잉 육종)이 재발해 더 이상 치료가 안 듣자 지방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소아를 받아주는 호스피스 완화 의료기관이 없어 결국 일반 소아암 병동에 머물다 눈을 감았다. 최 간호사는 “말기 소아암은 통증 조절이 필요한데, 이 때문에 퇴원을 못 하거나 부모가 끝까지 치료를 포기 못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소아 전문 호스피스 기관이 있다면 가고 싶어 하지만 그런 시설이 없어 오도가도 못하다가 대개는 타지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덧붙였다.
말기 암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만성 질환에 걸려 내일을 알 수 없는 아이들. 국내에는 이들을 위한 전문 치료와 돌봄 시스템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서울대병원이 2015년 4월부터 소아 전담 완화의료팀을 꾸려 체계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성인 완화의료팀 가운데 일부 소아 담당 인력을 두고 있을 뿐이다.
중증 질환을 가진 소아 청소년과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오래전부터 소아 완화의료의 제도화 필요성이 대두됐지만 외면받아 왔다. 성인의 경우 지난해 8월부터 호스피스(건강보험 지원)가 말기 암에서 3개 질환(에이즈 만성폐쇄성폐질환 만성간경화)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다.
소아 청소년은 성인과 다른 완화 의료적 접근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표현 능력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지 능력과 발달 수준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
이처럼 소아 전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가 오는 7월 국내 처음으로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신희영 김민선 교수팀이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 의뢰를 받아 연구 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 소아 완화의료 대상 환자 수와 분포, 특성, 적합한 서비스 모델 등을 연구해 왔다.
복지부는 4월까지 최종 연구 보고서를 제출받아 서비스 모델을 확정한 뒤 최대 2곳의 시범사업 기관을 선정, 운영할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1억여원의 정부 예산으로 시범 사업을 하고 향후 건강보험 지원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소아 완화의료, 연간 4000∼5000명 예상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소아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을 ‘기대여명을 제한하는 질환(Life-limiting conditions·LLC)으로 잡았다. LLC는 성인기까지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질환을 말한다. 말기 소아암뿐 아니라 중증 복합질환(선천성 유전질환 등), 희귀난치성질환 등이 포함된다.
연구팀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토대로 LLC 질환의 유병률과 사망률을 추출했다. 소아암이나 중증 근육·대사질환의 경우 일반 소아 청소년 나이(19세 이하)에서 진단받아도 그 이후까지 병과 의료적 처치가 지속되기도 해 국제 관례에 따라 연령은 24세까지로 정했다.
분석 결과 LLC 환자는 연간 15만∼16만명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LLC 환자 16만5057명 가운데 암은 21.2%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비(非)암질환이었다.
LLC 유병 환자는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뢰와 상담이 가능한 인원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더 전문적인 완화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인원은 LLC로 실제 사망한 인원으로 추정 가능하다. 최근 3년간(2013∼2015년) LLC 질환으로 숨진 아이들은 연간 1300명 정도였다. 2015년 사망자 1302명 가운데 암은 35.2%(458명), 비암질환은 64.8%(844명)였다. 소아 청소년 완화의료 대상에 암뿐 아니라 비암질환에 대한 폭넓은 고려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유병 질환 수(3년간 평균)는 3개 이상이 21.6%, 2개 34.3%, 1개 44.0%였다. 암·에이즈·만성간경화 등 단일 질환이 많은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중증의 복합질환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만큼 그에 맞는 서비스 모델 개발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대병원 소아 완화의료팀 김민선 교수는 “크게 보면 연간 15만명 정도가 소아 완화의료의 상담·의뢰 대상에 해당되지만 집중적 완화의료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인원은 사망자(연 1300여명)의 3∼4배인 연간 4000∼5000명 수준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어른과 다른 서비스 모델 개발돼야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가 생명이 제한된 질병과 그 질병 말기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판정이 성인에 비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소아암의 경우 성인에 비해 완치율이 높아 의료진도 적극적인 치료를 권장한다.
따라서 소아 청소년 완화의료는 죽음에 임박한 말기 환자의 임종 돌봄에 치중하는 성인과는 달리 접근해야 한다. 소아 청소년의 경우 성인보다 더 빠른 시점에 완화의료의 개입이 필요하다. 항암 등 기존 치료도 중단하지 말고 병행해야 한다. 치료를 포기하는 게 아니어서 기존 진료팀과 소아 완화의료팀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치료하다 병이 악화돼 회복하기 힘든 말기 상황이 되면 임종 돌봄 서비스(사별 안내 등)를 제공한다.
서울대병원 소아완화의료팀 문이지 사회복지사는 “질환 진단 시점부터 완화의료팀에 의뢰돼 쭉 같이 지내며 라포(상호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 성인들처럼 임종기에 개입하면 아이나 가족 모두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지난해 6∼8월 소아청소년 전문의 120명에게 소아 완화의료의 개입 시점을 물었더니 10명 중 3명(29.8%)이 “완치 가능성이 희박한 질환 진단시”라고 답했다.
완화의료 서비스 모델은 소아전문 병동(입원형) 보다는 자문형이나 가정형이 선호되는 걸로 나타났다. 김민선 교수는 “소아 호스피스 병동을 따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에게 ‘낙인 효과’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원래 치료받던 곳(질환별 병동)이나 외래를 통해 의뢰가 들어오면 전문 완화의료팀이 출동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문형, 집에 머물 경우 직접 찾아가는 가정형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단기 휴식’ 서비스 도입·국가 지원 필요 지적
아울러 유럽 일본 등에서 시행되고 있는 ‘단기 휴식(respite)’ 서비스의 도입과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시간 간병하는 부모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짧게는 3∼4일, 길게는 20일까지 환아를 입원시켜 전담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돌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소아청소년 전문의 93.4%가 이런 단기 휴식 서비스 도입을 찬성했고 국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단기휴식 서비스 제공 기관으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48.8%), 대학병원의 어린이병원(22.3%), 공공병원(13.2%), 보건소(9.1%) 등의 순으로 꼽았다.
향후 소아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제도화를 위해선 권역별로 적어도 1개 이상의 의료기관이 소아청소년에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상 환아의 절반 이상이 서울과 경기 외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어 지방 거주 환아들은 상대적으로 서비스 받을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2016년 지정된 권역별 어린이공공전문진료센터(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병원, 전국 국립대병원)에 전문 완화의료팀을 갖춰 서비스를 제공하고 현재 성인 중심으로 운영 중인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98개)에 소아 완화의료팀을 별도 구성, 권역별 전문진료센터에서 소외되는 환아들을 맡아 사각지대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And 건강] 내일을 알 수 없는 아이들…“동행이 되어 줄게”
입력 2018-02-06 05:00 수정 2018-02-06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