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평창 北美대화’ 가능성 타진… 트럼프 답변 않고 “평화적 개최 희망”

입력 2018-02-04 19:14 수정 2018-02-05 00:32
사진=뉴시스·AP뉴시스

펜스 부통령도 ‘평창에서
북측과 마주치지 않도록
의전 준비해줄 것’ 요청

靑, 대화 나서 달라 했지만
美, 제재·압박 기조 그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중 북·미 대화 가능성을 타진했다. 양 정상은 최근 두 달 사이 다섯 번이나 통화하며 평창올림픽과 북핵 문제에 대한 의견을 조율해 왔다. 하지만 미국은 문 대통령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평창올림픽 기간 대북 접촉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청와대는 전방위적인 미국 설득 작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2일 자정쯤 트럼프 대통령과 30분간 통화하고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 개선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이 방한 기간 북한 대표단과 유의미한 접촉에 나설 의사가 있는지 타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답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3∼4주 전만 해도 많은 국가가 평창올림픽 참가를 두려워하며 참가 취소를 검토했으나 지금은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며 평화적 개최를 희망한다는 뜻만 내놓았다. 이어 펜스 부통령도 2일(현지시간) “전략적 인내의 시기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평창에 간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평창올림픽 주요 행사에서 북측과 마주치지 않도록 의전을 준비해줄 것도 청와대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펜스 부통령은 개막일 전후 2박3일 정도 국내에 머무를 예정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4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화에 나서 달라’는 우리의 바람을 전달했지만 미국은 (제재·압박 위주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며 “의전 상 의도적으로 미국과 북한이 조우하도록 배치하는 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번 스탠스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밝혔던 입장에 비해 다소 강경해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고위급 대표단 파견 약속(지난해 11월 30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합의(1월 4일)에 이어 지난달 10일엔 “북한이 원한다면 북·미 대화도 열려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은 그가 갖고 있는 원칙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추측한다. 미국을 잘 설득하고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날 오후 늦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고위급 대표단장으로 파견한다고 통보했다. 김 상임위원장은 북한 헌법상 수반으로 권력서열 2위인 인사다. 북한이 개막을 닷새 앞둔 상황에서 고위급 대표단장을 발표한 것은 막판까지 한·미의 대화 의지를 가늠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김 상임위원장을 평창올림픽 개막식 전 문 대통령이 주최하는 정상리셉션에 초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평창올림픽이 북·미 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대표단의 급은 높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5일 열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와 6일부터 이어지는 연쇄 정상회담,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 관련 준비에 매진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