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지난 대선에서 감시 권한을 남용해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사를 했다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누네스 메모’가 2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메모 공개로 (러시아 스캔들 관련) 혐의를 벗었다”며 기세등등했지만 일각에선 ‘대통령이 사법기관의 신뢰성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미 공화당이 주도해 하원 정보위가 공개한 4쪽 분량의 누네스 메모는 “FBI가 2016년 해외정보감시법(FISA)에 의거해 트럼프 캠프 외교고문인 카터 페이지에 대한 감시영장을 신청할 때 민주당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를 활용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잘못된 정보란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촉발한 ‘트럼프 X파일’을 지칭한다.
X파일에는 트럼프 캠프 인사들의 러시아 정보기관 연루와 트럼프 대통령의 섹스 파티 스캔들 등이 담겼다. 하지만 X파일 제작 과정에 민주당 측이 관여됐다는 의혹 때문에 신뢰도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이다.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팀이 러시아 게이트 수사로 트럼프 정권의 정통성을 겨냥한 상황에서 누네스 메모 공개는 수사 자체의 적합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공격을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맞불 작전’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건 공개 후 트위터를 통해 “이 메모는 ‘트럼프’의 혐의를 완전히 벗겨준다. 공모는 없었고 사법 방해도 없었다”면서 “이(러시아 스캔들 수사)는 미국의 수치”라고 주장했다. 또 “FBI와 법무부 수뇌부는 신성한 수사절차를 민주당에 유리하고 공화당에 불리하도록 정치 쟁점화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주도하고 누네스 메모 공개를 반대해 온 FBI와 법무부 고위인사들을 겨냥해 공세를 한층 강화한 것이다.
현지 언론은 문건 공개에 반발해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과 로드 로젠스타인 법무부 차관이 사퇴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더불어 백악관이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사법기관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왔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현대사에 대통령과 법 집행기관의 이 같은 전면전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미국인의 삶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관들의 신뢰성을 현저히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법무부·FBI 겨냥 트럼프의 대반격
입력 2018-02-04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