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캐나다와 미국 출신 선수들의 귀화를 추진해서, 7명의 파란 눈을 가진 선수들이 태극기를 달고 빙판 위에서 뛰게 된다. 민족도 국적도 달랐지만, 올림픽을 위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태극기를 달고 이번 평창올림픽에 나간다. 그래서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국가와 국민’이 ‘순혈주의 한민족’을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스포츠 세계에서는 민족보다 국가가 우선시된다. 외국 선수가 귀화에서 대한민국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것처럼, 우리 선수들도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해서 그 국가의 국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는 세상이 됐다. 전자는 우리에게 익숙한데 후자는 익숙하지 않아 약간의 충격도 있었다. 안현수 선수가 그렇다.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서 국가는 국기로 상징화되고 대표팀 선수로 구체화되는데, 민족은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큰 다문화 국가에서 소수민족 출신이 성공해 자긍심을 높이는 경우 그 민족이 드러나지만 여전히 국가 안의 이야기다. 남북 합의로 구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대한민국 선수와 북미지역 한국계 귀화선수, 그리고 북한 선수들로 구성됐다. 피를 나눈 한민족이라고 할 수 있으나 국가는 없는 한민족팀이 한반도기를 달고 올림픽에 나가게 된다. 스포츠 세계에서 민족이 국가와 거의 동일시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다수 인종·민족이 존재하지 않는 대한민국과 북한이 그렇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보면 한민족과 대한민국, 북한으로 ‘하나의 민족=하나의 국가’의 등식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민족은 전 세계에서 다양한 국가의 당당한 시민으로 존재하기에 한민족과 국가를 동일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근대적이다.
남자 대표팀은 글로벌 국가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진 반면 여자 단일팀은 감성적인 민족 프레임 속에서 이뤄졌다. 그래서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이중적 의미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남녀 아이스하키팀에서 각각 구별돼 나타난다. 내셔널리즘에 대한 이러한 현상은 오랫동안 남한 사회의 갈등을 부채질하는 요인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중심으로 글로벌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폐쇄적이고 혈연적인 민족주의관이 분단 상황 속에서 여전히 충돌하고 있다. 여자 단일팀 구성은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프레임으로 대한민국 국가·국민을 간과한 것이다.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은 정치적으로 선전하기 좋은 민족 공동체 코드 속에 눈치를 보며 숙이게 됐다. 국가대표팀 경기 때마다 외쳤던 ‘대∼한민국’도,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일상으로 쉽게 녹아들어 친숙해진 태극기도 이번 올림픽에서는 주변화된 것이다. 그 대신 지도에서 남과 북이 지워진 한반도기가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다음 주에 올림픽 개최국의 국기를 일정 부분 잠시 감춰야 하는 큰 양보 속에서 평창올림픽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기에 얼음과 눈 위에서 펼치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어진 양보를 한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될 듯하다. 그리고 잠시 주변화됐지만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른다면 감춰진 태극기는 국민들 마음속 중심에서 휘날릴 것이다.
조성식 한양대 스포츠사회학 교수
[기고-조성식] 국가와 민족, 그리고 태극기
입력 2018-02-02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