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판사 출신 공정위 비상임위원, 51차례 ‘소위원회’ 모두 불참

입력 2018-02-01 18:49 수정 2018-02-01 22:04

“재벌 손보겠다”는 준사법기관인 공정위 들여다보니…

공정위 사건 대리인 신분은 유지
가습기살균제 옥시 변호 맡았다가
독촉 받고서야 뒤늦게 회피 신청

“비상임, 기업 로비통로 악용 소지”


고법 부장판사 출신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이 임명된 뒤 9개월 동안 1심 재판격인 소위원회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직 변호사인 이 비상임위원은 행정소송 사건의 공정위 측 대리인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이달에 예정된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사건의 심판을 앞두고 공정위로부터 가습기 살균제 가해자 측 변론을 한 전력을 지적받자 뒤늦게 회피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비상임위원으로 임명된 김상준 변호사는 지난달까지 열린 51회의 소위원회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합의제 준사법기관인 공정위는 위원 9명(상임 5명, 비상임 4명)의 의결로 1심 재판과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과징금 규모가 큰 사건 등은 9명이 모두 참석하는 전원위원회에서 처리한다. 가맹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 등 주로 민생 관련 사건은 상임 2명, 비상임 1명으로 구성되는 소위원회가 맡는다. 지난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소위원회가 처리한 안건은 231건으로 전원위원회(198건)보다 많다.

비상임위원 4명은 매주 열리는 소위원회를 나눠서 맡는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불참하는 바람에 나머지 3명의 비상임위원이 9개월 동안 소위원회에 평균 17회 참석했다. 공정위는 비상임위원의 소위원회 참석을 의무화하기 위해 올해 초 ‘순번제 원칙’을 정했다. 그런데 김 변호사는 이마저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김 변호사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소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 비상임위원은 없다.

이와 별개로 김 변호사는 비상임위원직을 유지하면서 법원 행정소송에서 공정위를 대리하고 있다.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공정법 전문가는 “기업과 공정위 사이에서 공정한 판결을 하는 1심 재판관이 2심과 3심에서 공정위 편을 들고 있는 셈”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보면 기가 찰 노릇”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김 변호사를 비상임위원으로 임명한 직후 이런 문제를 놓고 의견을 구했다. 당시 김 변호사 측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김 변호사는 석연찮은 태도도 보였다. 그는 비상임위원 신분으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변호를 맡았었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 가습기 살균제 재조사 사건의 심판기일을 잡고, 심사보고서와 심의 일정을 비상임위원들에게 통보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15일쯤 공정위의 담당 과장으로부터 “왜 회피 신청을 하지 않느냐”는 독촉을 받고 나서야 회피 신청을 했다. 지난해 국감에서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 변호사가 공정위 신영선 부위원장과 고교·대학 동기인 점 등을 들어 공정성에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선동 의원은 “김 변호사는 여러 면에서 비상임위원 신분을 유지할 자격이 없다”면서 “공정위는 즉시 해임하고 세계에서 유례가 없고 기업 로비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는 비상임위원 제도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소위원회는 참석할 여력이 안 돼 거취를 고민 중”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연초에 동료 상임위원에게 회피 의사를 밝혔으며 이를 숨길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