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선 부르는 ‘장관의 입’… 일 터지면 TF만 우후죽순
거래소 폐지 놓고 오락가락
기재부 “결정된 것 없다”
재건축 연한도 갈피 못 잡아
아동수당도 마찬가지
“부처 실적 욕심 탓” 뒷말
정책당국 수장들의 중구난방식 입장 표명으로 새해 초부터 시장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부처 구별 없이 태스크포스(TF) 만들기에만 급급한 모습도 나타난다. 일관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컨트롤타워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시장 혼란은 각 부처 수장들의 ‘입’이 진앙이다.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폐쇄에 대한 인식이 대표 사례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일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가상화폐 통계 사이트인 코인마켓앱에 따르면 박 장관 발언 이후 1시간 만에 비트코인 등 가격이 약 12% 하락했다.
이튿날 “거래소 폐쇄 문제는 조금 더 부처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에 시장은 진정 기미를 보였지만, 며칠 후 김 부총리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거래소 폐쇄는 살아 있는 옵션”이라고 밝히자 시장에선 가상화폐를 투매하는 ‘패닉셀’이 재연됐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 18일 “거래소를 전면 폐쇄하거나 불법행위를 저지른 곳만 폐쇄하는 두 가지 방안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고 힘을 실었다. 흐름만 보면 ‘폐쇄’가 기정사실처럼 들린다. 하지만 1일 기재부에 따르면 거래소 폐쇄와 관련해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다.
부동산 문제도 비슷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8일 “건축물 내구연한 문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현행 30년인 재건축 연한을 40년으로 연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기준 21만3177가구의 아파트가 재건축 대상이다. 법적 연한이 바뀌면 대상 가구 수가 그만큼 줄어든다. 불과 일주일 후 김 부총리는 “정해진 정책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아동수당도 일주일 만에 정책이 오락가락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100%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18일 정부 업무보고에서는 원안대로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0∼5세 아동에게 지급하겠다며 말을 바꿨다.
일련의 혼선은 부처 수장들이 제각기 행보를 한 게 원인으로 꼽힌다.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협의가 끝나지 않은 발언이 개별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경제부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발표 창구의 단일화는 당연한 원칙”이라며 “자기 실적 욕심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뒷말이 공공연하다.
여기에 우후죽순 구성되는 TF는 혼선을 더 키우고 있다. 기재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를 강조하자 지난 28일 김 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청년 일자리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이틀 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도 범정부 청년 일자리 대책 TF를 꾸리겠다고 천명했다. 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요 정책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좋지만 책임을 분산하는 구조가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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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2-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