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세대’ 2030, 가상화폐에 또 좌절
대학 휴학생 극단적 선택
투자 실패 후 우울감 호소
제2,제3 유사 사태 우려
정부 대책 마련 서둘러야
한 대학 휴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상화폐’ 광풍이 불면서 이곳저곳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와중에 벌어진 사건이다. 젊은이들, 심지어 군인들도 투기의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현상에 대한 사회 안전망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일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31일 오전 7시50분쯤 부산진구의 한 아파트에서 A씨(20·대학 2년 휴학)가 자신의 방 침대에서 숨져 있는 것을 어머니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 상태 등으로 볼 때 타살 정황은 없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던 A씨는 가상화폐에 손을 댔다. 지난해 8∼9월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용돈 등을 아끼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 2000여만원을 투자했다. 가상화폐 가치가 급등하면서 한때 2억원까지 불렸지만 지난해 말부터 폭락하면서 원금까지 큰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A씨는 가족에게 우울감을 호소했고 병원에서 수면유도제 등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입수해 가상화폐 투자 규모 및 횟수와 사망 인과관계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며 “가상화폐 외에 A씨가 목숨을 끊을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A씨와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최근 주요 가상화폐 가격이 폭락하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고, 손해를 봤다며 푸념하는 투자자도 많다. 부산교대 황홍섭 사회교육과 교수는 “가상화폐가 시대적 흐름이지만 무분별한 투기는 경계해야 한다”며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A씨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투자 피로감’ ‘자살 전염효과’도 우려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 윤진 상임팀장은 “큰돈을 잃으면 가족에게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화 상담 등 주변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과 교수는 “투자 실패가 괴롭겠지만 건강이나 더 큰 것을 잃어선 안 된다”며 “지금이라도 가상화폐에 매달리지 말고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젊을 때 경험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초고위험 투기’ 성격을 갖는 가상화폐 투자의 위험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가상화폐의 가치는 어느 누구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대 경영학부 박창균 교수는 “정부가 수차례 경고했다.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안 늦었으니 손절매를 하고 나오라는 게 청년층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는 내재가치가 매우 불확실하다”며 “일반인은 함부로 투자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부산=윤봉학 기자, 나성원 기자 bhyoo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투기사회’ 청춘을 앗아가다
입력 2018-02-01 19:44 수정 2018-02-01 2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