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조원일] 밀양 화재 참사서 드러난 ‘탁상행정의 전형’

입력 2018-02-01 19:26

“아…, 어…, 그건 다시 확인을 좀 해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밀양 화재참사 이후 매일 진행된 브리핑에서 밀양시 공무원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잘 모르겠다. 다시 확인해서 자료를 드리겠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한 공무원은 보직 순환 탓이라고 이유를 댔다.

밀양시의 관리감독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시가 의혹에 대해 명확하게 답변을 못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평소에 행정을 안일하게 했기 때문이다. 밀양시와 병원 간의 유착 의혹까지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법 증축을 한 병원은 벌금만 내면서 배짱 장사를 했는데 이행강제금만 부과할 뿐 추가 조치를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다. 심지어 관할 보건소는 병원의 인력이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기자는 참사 발생 후 밀양에서 의료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대다수는 “세종병원에 언젠가 큰일이 생길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관리감독을 해야 할 시와 보건소는 전혀 몰랐다고,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세종병원을 운영하는 효성의료재단 손경철 이사장은 2008년 의료법인을 만들어 병원을 개원한 직후부터 불법 무단 증축, 편법 인력 운용 등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해 왔다. 병원 인수 당시 2008년엔 영업손실이 2억4000만원이었으나 8년 만에 9억5000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손 이사장은 밀양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민간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단체 공공위원장은 현직 시장이다. 평소 성격이 화통하고 털털하다는 손 이사장은 지역에서 유대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만 인구의 밀양은 소위 ‘한 다리만 거치면 다 아는’ 조그마한 도시다.

지역 터줏대감들이 형님 동생하면서 지낸 것이 제대로 된 감독과 감시를 막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조그만 틈이 어쩌면 큰 사고로 이어진 건 아닐까. 꼭 이번 화재 참사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닐 듯해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조원일 사회2부 기자 wc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