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 박사는 경제학의 ‘마더 테레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자유로서의 발전’에서 전례 없이 풍요롭지만 결핍을 앓고 있는 현대 서구사회를 진단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결핍은 흥미롭게도 소득의 빈곤이 아닌 역량의 빈곤이다. 센은 부유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고임금 소득자가 겪는 역량의 결핍을 자신이 개발한 ‘빈곤율 지수(sen index)’를 통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부유한 흑인이 아프리카의 가난한 흑인보다 더 역량의 결핍을 겪을 수 있다. 센은 사람들의 역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곧 자유의 확장이며, 그것이 경제발전의 요체라고 말한다. 그는 경제 발전을 국내총생산(GDP) 하나로 측정하는 시대의 부박함을 견책한다.
예수님은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자유의 확장이 진정한 경제 발전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2000년 전에 이미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다. 잔치 시간이 되자 그는 종을 보내 초대한 사람들에게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라고 전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밭을 샀는데 나가 봐야겠습니다”라고, 다른 사람은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시험하러 가는 중입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방금 결혼을 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한결같이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잔치에 갈 수 없는 이유로 내세웠던 부동산과 동산, 결혼은 살림의 주된 요소들이다. 살림살이를 의미하는 희랍어 ‘오이코노미아’는 경제를 의미하는 ‘이코노미’의 어원이 된다. 경제 활동의 목표가 단지 눈에 보이는 성장에 있다면 초대받은 그들은 유능한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하나같이 초대에 응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피력하기에 급급하다. 거듭되는 거절은 생활의 여유와 자유의 결핍, 곧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퇴보하는 역량의 결핍을 드러낸다.
그들의 거절에 주인은 종을 시켜서 초대받지 못했던 이들을 부른다.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몸 불편한 자들,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너라.” 주인의 초대는 큰 길과 산울타리, 곧 경계를 넘어 변두리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은 그 초대를 거절하지 않고 즐거이 참석한다.
그 결과 초대 받았던 이들은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의외의 사람들이 잔치에 들어가게 된다. 소위 유력했던 이들은 잔치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무력했던 그들이 잔치 자리를 빛내게 된 것이다. 비유는 파격적이다. 과연 누가 유능한 자이며, 누가 무능한 자일까.
예수님은 비유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사람과 불구자와 절뚝발이와 소경들을 초대하여라. 그러면 그들이 너에게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의로운 사람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이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유능한 자는 순간의 가치를 영원의 가치로 바꿔간다. 영원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대접하며 세상의 관계를 영원의 관계로 이어간다. 이것이야말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며, 물질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하는 것이며, 관계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꽃피우는 것이다.
성도의 역량이 증대되고 자유가 확대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이며 진정한 신앙의 요체가 아닐까.
박노훈 (신촌성결교회 목사)
[시온의 소리] 신앙의 요체
입력 2018-02-02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