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매파’인데… 트럼프, 더 강한 인물 원해

입력 2018-01-31 22:24 수정 2018-01-31 23:52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교수가 지난해 1월 18일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열린 ‘트럼프 시대, 한국 경제의 진로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차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첫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됐다가 최근 내정이 취소된 것으로 30일(현지시간) 전해졌다. 뉴시스

트럼프와 대북 입장차에 ‘아웃’… 향후 전망은

아그레망까지 거친 내정자
지명 철회는 이례적

美 시사지 “트럼프, 점점 더
전쟁 준비하고 있다는 판단 들어”

한반도 위기 고조될 가능성


빅터 차 미 조지타운대학 교수는 미국 공화당 내 저명한 외교안보 전문가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트럼프 대통령에 반기를 들지 않아 진작부터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에는 국무부나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차관보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을 지내면서 북한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 강경파라는 것도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차 교수는 지난해 여름 공직자 후보 검증에 동의하면서 상원의 인준을 통과하면 조지타운대학 교수와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직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백악관 측에 약속했다. 그만큼 열의를 보인 것이다. 차 교수는 평소 사석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정책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을 삼갔다.

그런 차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선제 타격은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수백만명과 미국인 수만명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3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에서 “내가 트럼프 행정부의 한 직위(주한 미국대사)에 고려되고 있을 때 이런 견해를 행정부 관계자들과 공유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차 교수가 NSC 관계자들에게 대북 선제타격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선제타격을 반대한 사람은 차 교수만이 아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최근 의회 증언을 통해 “선제타격으로 북한을 통제하려는 유혹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코피를 터뜨려야 한다’는 취지가 담긴 코피 전략이 위험한 계획이라고 지적한 차 교수 주장도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공습으로는 핵·미사일 시설을 모두 제거할 수 없으며, 북한의 보복으로 입을 피해가 크다는 게 요지다.

차 교수는 WP 기고문에서 “한국에 상주하는 미국인 23만명과 일본에 상주하는 90만명의 미국인들을 북한의 공격 범위 밖으로 소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선제타격 대신 국제사회의 단합된 제재와 한·미·일 간 정보공유 강화를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입장이 재확인된 만큼 앞으로 한반도 위기가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차 교수 내정 철회와 북한을 비난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거론하면서 “두 가지를 곱씹을수록 대통령이 점점 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정연설 때 탈북청년 지성호씨와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거론한 것도 도덕적 분노를 자극해 군사공격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수순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주한 미국대사 후보 물색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워싱턴 소식통은 “백악관이 차 교수보다 더욱 강경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며 “인선 작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에서는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