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스키 선수단의 마식령스키장행 전세기 운행이 미국의 제재 방침 때문에 겨우 출발 90분 전에야 결정됐다. 미 행정부는 지난해 9월 대북 행정명령 13810호를 통해 북한을 경유한 모든 비행기는 180일 동안 미국에 착륙할 수 없게끔 했다. 진통 끝에 미국이 예외로 인정해줘 이륙할 수 있었다. 이게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남북관계 개선도 잘 이뤄질 수 없다. 한국이 대북 전략을 짤 때 끊임없이 조율하고 설득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말해주는 사례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올림픽 이후 남북교류 과정에서 한·미의 시각차가 드러날 수도 있다. 북한은 올림픽 이후 이런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한·미의 불협화음을 유도하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의 무모한 핵무기 추구가 본토를 위협할 수 있다”면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고의 압박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지만 기존의 제재와 압박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의 올림픽 참여를 자신의 압박 정책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트럼프다. 그러니 최고의 압박 작전은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는 한 확실히 유지될 것이다. 국정연설 중 북한 관련 표현이 비교적 절제된 것은 평창올림픽을 감안한 것으로 봐야 한다. 올림픽이 끝나면 미국은 강한 압박의 신호를 보낼 것이다. 우리에게도 ‘잔치는 끝났고 북한은 변화 조짐이 없다’며 그렇게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들에게 호소했듯 정부는 모처럼 조성된 남북대화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려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계산이겠으나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그동안 핵·미사일 도발을 해온 태도를 보면 그렇다. 미국은 변화할 생각이 없는데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트럼프도 “지난 경험은 우리에게 안주와 양보는 단지 침략과 도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올림픽 이후 노정될지도 모를 한·미 간 이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양국의 공동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게 유일한 기준이다. 여기에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정부는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나타난 비판 여론을 깊게 새겨야 한다. 정권 일각의 감상적 대북 정책은 더 이상 여론에 먹히지 않는다. 현 정권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늘 종북 프레임에 집어넣는 보수 일각의 주장도 문제지만, 북한에 늘 저자세를 보이는 대북 정책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북 정책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감상주의에 치우치면, 그리고 당당하지 못하면 이젠 여론의 호응을 받지 못한다.
[사설] 전세기 방북에도 미국이 관여하는 게 냉혹한 현실
입력 2018-01-31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