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목사가 구어체 설교로 풀어낸 구약… 한때 교회 내 ‘금서’

입력 2018-02-01 00:03

영화 ‘1987’의 마지막 스크롤이 올라갈 때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숨진 젊은이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 문익환 목사의 책이 28년 만에 다시 나왔다.

1990년 출간된 ‘히브리 민중사’를 21세기 초인 지금 다시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있다. 하얀색 초판과 달리 짙은 색에 고(故) 신영복 선생의 필체로 무게감을 둔 새 표지를 펼쳐 살피다 보니, 오히려 처음 나왔을 때보다 지금 더 필요한 책이다 싶었다.

문 목사는 민주화운동가이기 전에 구약성경을 연구한 신학자였고 목회자였으며 시인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네 가지 정체성이 하나로 살아 있다. 구약을 맛깔 난 구어체 설교로 풀어냈는데, 당대의 최신 신학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성경을 보는 관점을 제시한다.

문 목사는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만들던 노예, 즉 하비루(Habiru)가 히브리의 어원이라는 시각에서 구약을 해석한다. 하비루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은 곧 핍박받던 노예들이 여호와에게 구원받아 팔레스타인 광야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 역사책이다. 다윗은 땅도 없이 떠돌던 하비루 중의 하비루였고,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벌인 승부는 하비루의 하나님이 권력자의 신인 바알을 물리친 사건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교회 안보다 밖에서 더 환영을 받았다. 오히려 대부분 교회에서는 금서 취급을 받았다. 당시엔 대부분 교회가 사회적 이슈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했다.

지금은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 보수적인 교회에서도 대통령이나 정권을 향한 비판적인 발언을 꺼리지 않는다. 반대로 ‘개독교’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교회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교회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평신도들 사이에선 신학적 기초 위에서 성경을 깊이 읽고자 하는 갈망이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문 목사는 1년 전 평양을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맹렬한 비난을 받았지만, 그 뒤로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한 수많은 목사와 기독교인이 북한을 다녀왔다. 이제는 색깔론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여건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한 소수 선각자에게 빚을 졌고, 민주화와 통일에 앞장선 진보적 인사들에게도 빚이 있다. 이 책은 후자의 유산을 오늘 한국교회의 소중한 신앙 전통으로 되새기게 해주는 귀중한 책이다. 1989년 북한을 방문한 뒤 감옥을 오가느라 책을 다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