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저자는 아버지를 ‘가정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던 분’으로 표현한다.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자녀들과 아무런 상호작용을 하지 않았다. 어쩌다 아버지가 계시는 날엔 집 안에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 정도였다.
아버지를 이렇게 기억하는 건 저자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행 장면을 꽤 접해서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폭행할 때마다 저자는 무력하게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폭군 밑에서 숨죽이는 하인 같았다고 했다. 단 한 번도 자녀를 때리진 않았지만 만취해 집에 들어오는 그 자체가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성장과정 내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많은 걸 잃게 했다. 부녀간 아름다운 관계를 경험해본 적 없는 저자는 ‘정서적 절름발이’로 자랐다고 자평한다. 방황하던 그를 붙잡아준 건 신앙이었다. 저자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이어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에서 성경적 기초상담과 가족치료를 공부하면서 신앙을 통해 정체성을 찾는다.
잊고 지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된 건 알코올성 치매와 심장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면서부터다. 15년간 지근거리에서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저자는 무의식적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 그간 겪은 삶의 문제가 부모의 사랑을 제때 받지 못해 생긴 상실감에서 왔다는 것도 알게 된다. 내면의 상실과 억압된 감정을 확인하게 된 그 순간,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저자는 “아버지를 돌보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라고 자문하면서 “아마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고 답한다. 그리고 “늦게라도 아버지와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것은 큰 축복”이라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이제 아버지는 내게 큰 축복”이란 담담한 고백이 나오기 전까지 책엔 저자의 눈물 맺힌 삶이 가득 담겼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오랜 세월 걸려 회복한 아버지와의 관계… 늦었지만 축복으로
입력 2018-02-0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