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왕치산의 귀환… 美·中 갈등 해결사 될까

입력 2018-01-31 05:00

3월 양회서 부주석 오를 가능성
위기마다 등장한 시진핑 최측근
“美 외교사절이 꼭 만나는 인사”
배넌도 작년 방중 때 90분간 독대

베이징시장에 시진핑 측근 천지닝

‘왕치산’(사진)이라는 이름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최측근’ ‘오른팔’ ‘권력 2인자’ 등 여러 별칭으로 불린다. 권력기반이 취약했던 시 주석이 황제에 버금가는 입지를 굳힌 것은 그가 진두지휘한 부패와의 전쟁 덕분이었다. 그래서 왕치산은 서슬 퍼렇던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란 직책이 어울렸다. 하지만 그가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 세계 금융위기에서 중국을 지켜낸 ‘경제통’이자 미국 인사들과 가까운 ‘미국통’이란 사실은 기억 속에서 묻혀 있었다. 최근 그의 국가부주석 기용설이 가시화되면서 그가 미국과의 무역 갈등을 풀 구원투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0월 최고지도부에서 퇴진한 왕치산이 경색된 미·중 관계를 복원시킬 해결사로 복귀할 것이라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왕치산은 이날 후난성 인민대표대회에서 118명이 선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에 포함됐다. 전인대 대표가 돼야 국가기구 책임자 피선거권이 있다. 따라서 그가 오는 3월 양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국가부주석에 오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왕치산은 국가부주석 또는 다른 직책을 맡더라도 시 주석에게 대미 관계를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WSJ는 전망했다. 그는 사실 기율위 서기를 맡기 전까지 금융·경제전문가로 통했다. 주룽지 전 총리의 총애를 받던 그는 1993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발탁돼 치솟던 물가를 잡았고, 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는 광둥성 부성장으로 금융 안정에 기여했다. 2003년에는 베이징 시장으로 차출돼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를 진정시켰다.

특히 2007년부터 2012년까지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 당시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어떤 자리를 맡아도 해법을 내는 ‘특급 소방수’로 명성을 얻었다.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중국 경제팀에서 가장 명민하고 자본주의에 해박한 인사”라고 왕치산을 평가했다. 왕치산은 이후 친미 인사로 각인됐다. 미 외교사절단이 중국에 올 때는 왕치산 면담이 필수코스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초대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낸 스티븐 배넌도 지난해 9월 방중 때 왕치산과 90분간 독대했다.

따라서 미국에 발이 넓은 왕치산에게 미·중 갈등을 해결할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가 복귀하면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등이 미·중 관계개선 태스크포스(TF) 역할을 할 것이라고 WSJ는 내다봤다.

왕치산은 또 기율위 서기 경험을 통해 국내 대부분 분야를 속속들이 꿰고 있어 시 주석 곁에서 각종 위기관리 조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젊은 시절 시 주석과 문화대혁명의 고난을 함께한 동지다. 장기집권 기반을 다진 시 주석이 그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것은 더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한편 시 주석 측근 그룹인 ‘신칭화파’의 천지닝(54) 베이징시 시장대리가 30일 베이징 시장으로 선출됐다고 북경청년보가 보도했다. 그의 후견인은 시 주석이 칭화대 재학 시절 기숙사를 함께 쓴 천시 중앙당교 교장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