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거래자 접속 폭주로
거래소 홈페이지 오류 속출
금융거래 목적 등 입증땐
계좌개설 절차 까다롭지 않아
신규투자자 진입 허용 여부
기업·신한은행, 아직 결정 못해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실명제가 실시됐다. 실명확인을 시도하는 기존 투자자의 접속이 폭주해 일부 가상화폐 거래소 홈페이지에서는 오류가 속출했다. 한 중소형 거래소는 거래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거래실명제 첫날인 30일 가상화폐 거래소에선 실명 입출금계좌를 받으려는 기존 투자자가 몰리면서 서비스 지연 사례가 속출했다. 은행들이 업비트 등 4개 대형 거래소에만 실명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서자 거래 중단을 결정하는 중소형 거래소도 등장했다. 거래소 코인피아는 원화 입금이 계속 지연될 경우 오는 6일부터 모든 거래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고객의 거래안정성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원화 출금은 가능하다. 고사 위기에 몰린 중소형 거래소 이용자는 약 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우려와 달리 신규 은행 계좌 개설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코인원을 제외한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들은 당분간 기존 투자자에게만 실명 입출금계좌(옛 가상계좌)를 내주기로 했다.
본보 취재팀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의 IBK기업은행 지점을 찾았다. 기업은행은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주거래은행이다. 급여명세서 등을 제출하자 급여통장 명목으로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새 실명제에서는 거래소와 계약한 은행 계좌가 있어야 가상화폐 매매를 위한 추가 입금을 할 수 있다.
당초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자금세탁방지의무가 강화돼 계좌 개설 절차가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지점 직원에게 “급여통장으로 가상화폐를 매매해도 되느냐”고 묻자 “특별히 은행에서 금지할 방법은 없다”고 답했다. 서대문구의 신한은행 지점에서도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다만 영등포구의 NH농협은행 지점에선 통장 개설 때 “가상화폐에 투자할 수 있다”고 하자 신용카드를 새로 만드는 등 절차가 필요했다. 기업은행 서여의도지점에서 만난 A씨(32)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려고 2011년 만들어놓고 한 번도 안 쓴 계좌를 다시 살렸다”고 말했다. 급여통장 등 거래 목적을 입증하지 못하면 하루 인터넷뱅킹 한도가 30만원으로 묶이는 ‘금융거래 한도계좌’만 만들 수 있다.
다만 시중은행의 일선 창구에 고객 쏠림으로 인한 혼란은 없었다. 기업은행의 한 지점 관계자는 “이달 들어 신규 계좌 개설이 폭증했다. 평소 하루 10명 정도였다면 이달엔 하루 60∼70명 수준”이라며 “오늘도 문의가 많았지만 오히려 미리 만들어 놓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규 투자자의 가상화폐 시장 진입 허용 여부는 아직 제한적이다. 기업은행과 신한은행은 허용 여부를 아직 결론 내지 못했다. 농협과 거래하는 코인원만 이날 오후부터 신규 투자자에게도 실명 입출금계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농협은 신규 입출금계좌를 약 15만개 제공하기로 했다.
신규 투자자가 가상화폐 시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실제 진입 수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은행들은 기존에 제공했던 가상계좌수 만큼만 실명 입출금계좌를 주기로 했다. 은행 3곳을 합치면 약 170만개다. 기존 투자자에게 입출금계좌를 먼저 배분하면 남는 계좌가 많지 않을 수 있다. 국내 거래소에서 주요 가상화폐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선 실명제가 시작되면 투자금이 새로 유입돼 가상화폐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거래소 빗썸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오후 7시45분 기준 1236만4000원으로 전날 같은 시간보다 약 4% 하락했다. 신규 투자자의 진입 제한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글=나성원 홍석호 안규영 기자 naa@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가상화폐 실명제 첫날… 비트코인 4% 하락 중소 거래소 거래 중단 선언
입력 2018-01-31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