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10명 중 9명 “데이트 폭력 경험했다”

입력 2018-01-31 05:03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을 조사한 결과 피해 경험이 있는 기혼자 중 절반 정도가 가해자였던 상대방과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17.4%는 가정폭력 피해까지 호소하고 있어 데이트폭력을 가정폭력 연장선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는 서울 거주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중 9명꼴인 88.5%(1770명)가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30일 밝혔다.

응답 대상은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20∼60세 여성이었다. 데이트폭력 피해 유형은 신체적 폭력 뿐 아니라 언어·정서·경제적 폭력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빌려간 돈을 갚지 않거나 극심한 비난을 하는 경우 등도 정서적 폭력이라고 봤다.

문제는 데이트폭력이 가정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기혼 조사 참여자 가운데 ‘데이트 폭력 경험있다’ (742명)고 응답한 이들 중 46.4%는 가해자와 결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7.4%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강희영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데이트폭력이 해결되지 않은 채 결혼하면 가정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데이트폭력을 당하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과반 이상(69.5%)으로 나타났다. 경찰에 신고한 경우는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이 역시 9.1%에 머물렀다. 신체적 폭력을 당한 경우라도 전문상담기관에 요청했다는 응답률은 저조했다.

피해의 심각성을 인지했음에도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라는 응답이 21.6%에 달했고,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라는 응답도 15.9%로 나타났다.

행동을 통제하거나 언어·정서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 신체·성적 폭력 피해 유형 모두 연애를 시작한 뒤 1년 이내에 나타났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데이트폭력 예방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법적 조치 강화’를 꼽은 응답자가 73%로 가장 많았다. 피해 여성을 위한 정책으로는 ‘가해자 접근금지 등 신변보호 조치’(70.9%)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의료비와 법적 지원, 피해자 치유 회복 프로그램을 지원할 계획이다. 데이트폭력 상담 전용콜(02-1366)도 지속적으로 운영한다.

글=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