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최근 10년 간 최소 10명 확인
정식 논문보다 수준 낮지만
트렌드 빠른 분야선 더 중요
연구실적으로 인정사례 많아
교육부 전수조사엔 미포함
실제 2편에 등록된 교수 자녀
아버지와 같은 학교 진학도
교수사회에서 학술대회 발표용 연구논문집 프로시딩(Proceedings)에 미성년 자녀 이름을 올리는 방식의 스펙 관리법이 활용돼 온 것으로 30일 드러났다. 프로시딩은 정식 논문보다 한 단계 낮은 평가를 받지만 엄연한 연구 실적으로 인정된다. 논문보다 심사 과정이 느슨해 미성년 자녀의 경력 관리에 악용되기 쉽다. 고교생 자녀들의 대학입시에 활용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지난 10년간 최소 10명의 교수나 연구원의 고등학생 자녀들이 부모의 프로시딩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교수·연구원은 현재 고려대 충남대 경북대 경인여대 세명대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속이다. 정식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교육부 전수조사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다.
프로시딩은 학술지가 아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다. 학자들은 이를 기초로 정식 논문을 작성한다. 학술지 심사를 거쳐 정식 게재된 내용이 아닌 만큼 전반적 수준은 논문에 비해 낮다. 하지만 연구 트렌드가 빨리 바뀌는 분야에선 프로시딩이 오히려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한국연구재단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전자 등의 분야에선 논문보다 프로시딩을 더 중요한 성과로 여긴다”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확인한 자녀 10명은 대부분 공학 분야에 참여했다. 고려대 A교수는 2012∼2013년 로봇의 움직임과 공간 인식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2편의 프로시딩에 아들의 이름을 올렸다. 아들은 학교에서 진행한 R&E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연구하겠다고 신청했다. 이후 수시전형으로 아버지와 같은 학교 같은 학과에 진학했다.
A교수는 “아들이 입학할 땐 연구 실적을 제출하지 못하게 한 걸로 알고 있다”며 “(제출했더라도) SCI급 논문도 아닌데 입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학교 선생님께 아들이란 사실을 말씀드렸고 문제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도 했다.
정식 논문이 아니다보니 더 대담한 행태도 드러났다. 세명대 B교수와 경인여대 C교수는 자신의 프로시딩에 자녀 2명의 이름을 연달아 올렸다. B교수는 모두 5편의 프로시딩에 아들의 이름을 올렸는데, 이 중 3편엔 아들 2명의 이름을 함께 넣었다. 1편은 둘 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2009년 발표됐다. B교수는 “요새 젊은 친구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지 않느냐. 실제로 아들들이 연습해서 발표도 같이 했다”며 “대입 때 덕을 봤다 해도 당사자들이 같이 참여한 건데 나쁘게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로시딩을 스펙 쌓기에 활용한 사례가 미성년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100여건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는 셈이다.
대입 과정에서 프로시딩이 영향을 미쳤다는 증언도 나왔다. 대입 면접관이었던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프로시딩도 자기소개서에 적거나 면접 때 말하면 가점이 붙는다”며 “그런데 국내 학회에 제출하는 프로시딩의 경우 DOI(Digital Object Identifier·학술논문에 부여하는 고유 식별자)도 없고 관리도 덜 되니 부담 없이 자녀의 이름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국립대 교수도 “논문만큼은 아니지만 프로시딩 실적이 있다고 하면 눈에 띌 수밖에 없다”며 “만약 부모의 프로시딩에 이름을 넣어 입시에 활용하고 있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글=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단독] 학술지 안되면 ‘학술대회’ 논문에… 교수들 ‘자녀 스펙’ 새 꼼수
입력 2018-01-30 18:29 수정 2018-01-30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