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정치탐구] TV 안에 표 있다… 6·13 지방선거 ‘예능 대전’

입력 2018-01-31 05:00
오는 6월 13일 치러지는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이어지고 있다. 방송을 통해 기존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인지도와 주목도를 높이려는 시도다. 최근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박원순 서울시장. MBC 화면 캡처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장기간 고정 출연했던 이재명 성남시장. SBS 화면 캡처
JTBC '썰전'에 출연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위쪽부터). JTBC 화면 캡처
예능 프로 나와 성공한 정치인

박원순·이재명 시장, 우상호 의원
예능 출연 덕에 호감도 상승하자
“나도 나가겠다” 신경전 치열해져

지방선거 도전자 출연 문제 없나

선거법상 90일 전까진 제약 없어
공정성 문제될 수도… 조율 이뤄져야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예능 출연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른바 '정치 예능'이라고 불리는 시사정보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도 정치인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인기를 끄는 만큼 한정된 출연 기회를 두고 지방선거 예상 출마 후보들 사이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출마를 앞둔 정치인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유권자들의 주목도를 높이고 방송국도 유명 정치인을 통해 프로그램의 흥행을 기대한다. 자신에 대한 오해를 직접 해명하거나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도 한다. 기존의 정치적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며 이미지 변신을 꾀할 수도 있다.

출마 예정자들, TV 속으로

3선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7일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다. 박 시장은 ‘당내 경선을 앞두고 정치인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진행자 발언에 “여론조사를 했더니 게임이 끝났더라”고 태연하게 답변했다. 박 시장의 한 측근은 30일 “방송 출연이 적절한지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여러 의견이 있었다”면서 “대중적인 친화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자는 의견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방송에서 지방선거와 관련된 발언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선거를 의식한 출연인 것은 확실한 셈이다.

지난 21일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에 앞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우 의원은 지난 11일 JTBC 정치예능 프로그램 ‘썰전’에 나와 영화 ‘1987’을 소재로 패널들과 대화를 나눴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 의원은 직접 소감을 밝히면서 시위 상황도 설명했다. 다른 서울시장 후보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던 우 의원은 방송 출연 직후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후에도 정치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추가로 검토 중이다.

지난해부터 경기도지사 출마 의사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던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킨 상태다. 이 시장은 지난해 7∼9월 SBS 관찰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11차례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이 시장은 방송을 통해 아내를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명블리(이재명+러블리 합성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특히 중년 여성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다소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이 시장의 약점을 많이 보완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이 방송이 인기를 끌수록 잠재적인 경쟁자들의 ‘견제’도 많았다고 한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은 “해당 방송국은 다른 출마 예정자들의 항의를 받고 이 시장의 출연 분량을 일부 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의 모습이 당초 예상보다 큰 인기를 끌자 방송국 요청으로 촬영분을 예정보다 늘렸는데, 다른 후보자들의 항의로 다시 분량을 줄였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문제 없지만 공정성 시비 소지도

여의도 정가에선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 경쟁자들의 방송 출연 일정을 모니터링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이 많아졌다. 경쟁자가 특정 프로그램에 섭외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바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다. 이어 해당 방송국에 ‘왜 우리는 섭외하지 않느냐. 우리도 섭외해 달라’고 요청한다.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한 인사는 “우리도 출연하고 싶어 방송국에 계속 연락하지만 섭외가 잘 되지 않는다”면서 “여론조사 결과도 낮게 나오는 바람에 ‘왜 우리만 출연시켜 주지 않느냐’고 방송국에 따질 수도 없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일부 정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모습을 비춘다 해도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직선거법은 후보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의 방송토론 등에 대해서는 공평한 시간 분배 등을 규정한다. 하지만 예능을 비롯한 일반 프로그램에는 관련 조항을 따로 두지 않는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거방송 심의에 관한 특별규정’을 통해 선거 관련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강조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선거에 나설 후보자들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선거일 당일까지는 선거법에 의한 보도·토론 방송을 제외한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지방선거일인 6월 13일에서 90일을 남겨둔 3월 14일까지는 정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데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규정상 문제는 없지만 특정 정당이나 후보만 계속 출연해 다른 정당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 공정성이나 형평성 측면에서 출연 여부를 심의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현행 규정과 상관없이 유권자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정치인 스스로나 미디어가 공정성을 고려해 출연 여부를 적절하게 조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예능 출연 효과, 있다? 없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얻은 인기는 과연 실제 득표로 이어질까. 방송 출연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다.

안 대표는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기 전인 2009년 6월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을 만들어냈다. 당시 성공한 벤처기업인, 컴퓨터 백신 전문가 정도로 알려졌던 안 대표는 이 프로그램 방영 이후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청년 멘토’로 급부상해 주요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대선 후보들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왔다. 대중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줄 수 있는 기회라는 판단이 들면 각 후보 캠프가 적극적으로 출연 기회를 만들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박근혜 후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모두 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차례로 출연했다.

그동안 방송 출연을 꺼렸던 정치인들도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보다 적극적으로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검토하는 분위기다. 서울시장 후보 당내 경선을 준비 중인 민주당 A의원 측은 “그동안은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와도 정치인의 이미지가 희화화되는 것 같아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다들 출연하는 분위기”라며 “방송에 나가 실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선거에서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해 적극적으로 방송 출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예능 출연이 실제 투표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양날의 칼”이라면서 “선거를 앞둔 출연은 결국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의도가 뻔히 보이기 때문에 인지도가 있는 정치인의 경우 진정성의 측면에서 표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활발한 방송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여권 인사도 “일시적으로 인지도와 호감도가 올라갈 수는 있겠지만 후보 적합도에 대한 신뢰까지 예능이 해결해주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득실을 떠나 선거가 지나치게 예능 출연 위주의 인지도 경쟁으로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교수는 “예능 출연을 떠나 국민들이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정책과 정치적 비전을 살펴보고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판 신재희 기자 pa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