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세태] 입시·채용, 무너진 ‘경쟁의 룰’… 2030 힘 빠진다

입력 2018-01-30 05:05
자체 조사 병행한 대학도
전직 대학 논문 조사 안해
친구 자녀 논문 저자로
끼워넣기는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문제점 많아

대학 내서도 회의적 목소리
"필터링 시스템 등 갖춰야"


교육부의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끼워넣기 조사는 교수들의 자진신고에만 의존해 허점을 드러냈다. 대학들은 미온적으로 대응했고 대학 차원에서 조사위를 꾸려 전수조사에 나선 곳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친척이나 친구의 자녀를 논문 저자로 끼워넣는 등의 '꼼수'는 아예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교육부 발표와 국민일보가 추가 확인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관련 사례는 100건이 넘는다.

국민일보 취재결과 상당수 대학에서 자체조사 없이 교수들에게 자진신고 공지만 내린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교수 개인의 양심에만 조사를 맡긴 셈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산학협력단에서 이런 조사를 할 방법이 없다. 어떻게 하겠느냐"며 "이번에 교육부에 제출한 건 모두 교수들이 자진신고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들은 일부 자체조사를 병행했지만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아주대와 포항공대는 교수가 전직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은 조사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포항공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소속 교원들이 발표한 논문을 데이터베이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조사했다"며 "교수들이 다른 대학에 있을 때 발표했던 논문은 이 데이터베이스에 없다"고 말했다.

몇몇 대학은 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안동대 관계자는 "교수들에게 이런 사항이 있으면 제출해 달라고 이메일을 발송하고 자체조사도 했다"면서도 "방학 기간이라 교수들이 메일을 제대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고 논문도 너무 많아 솔직히 결과를 확신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학들 사이에서도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충남대 관계자는 "교수들이 1000명 정도 되는데 너무 방대해서 솔직히 한계가 있다"며 "앞으로 필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제대로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시내 한 사립대 관계자도 "교육부 발표를 보니 이번 조사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답한 대학들이 많았는데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드러나지 않은 게 훨씬 더 많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조사 대상이 한정됐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했다. 교육부는 교수가 자신의 중·고등학생 자녀와 함께 논문을 발표한 사례만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조카 등 친척이나 지인의 자녀를 논문에 끼워넣은 교수들은 조사에서 제외됐다. 2015년 SCI급 논문에 친구의 자녀를 공저자로 기재한 성균관대 A교수도 이런 이유로 조사에서 빠졌다.

현재 대학 소속이 아닌 전직 교수나 연구원도 조사에서 제외됐다. 10년에 걸쳐 논문 43편에 아들의 이름을 올린 서울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사직해 이번 조사에서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가속기연구소의 B연구원도 2010년 두 편의 SCI급 논문을 아들과 함께 발표했으나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장은 "부모가 자녀를 논문에 넣든, 친구 자녀를 넣든 기본적으로 문제는 같다"며 "이번 조사를 계기로 미성년자가 논문에 들어갈 정도로 기여했는지, 입시에 스펙으로 활용됐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공공기관 채용비리 재발방지책 있나

대부분 '고위직의 찍어누르기'
작정하고 개입 땐 방법 없어

기관장 압력에서 자유로운
감시의 눈길 있어야 재발 막아

정부, 상시감독 신고체계 구축
채용 전 과정 감사인 입회하고
적발된 곳 중점관리기관 지정


정부가 29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대부분은 '고위직의 찍어 누르기'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채용비리 실태를 보면 고위직이 작정하고 채용 등 인사에 개입하고 나설 경우 아랫사람이 배겨낼 재간이 없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위직이 미는 특정인을 뽑기 위해 인사지침을 무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상경계열 박사를 뽑겠다고 공고하고선 전공이 전혀 다른 특정인을 서류전형에서 합격시켰다. 지방공공기관인 제주4·3평화재단은 외국어 능통자를 채용한다면서 학원수강 확인서만 제출한 특정 응시자에게 서류심사 합격의 영예를 안겼다. 실력과 상식보다 고위직의 입김이 중요했던 셈이다.

공공연히 채용비리가 발생해온 원인으로는 허술한 감시 체계와 불투명한 채용 과정이 꼽힌다. 기관장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감시의 눈길이 있다면 부정을 저지르기 쉽지 않았겠지만, 그런 체계가 부족했다. 그래서 정부의 재발방지책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상시 감독과 신고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현행 일회성 채용실태 점검으로는 비리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채용 전 과정에 감사인이 입회하고 참관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인사부서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감사부서도 채용 관련 문서를 관리토록 하는 이원화 관리를 추진한다. 비리가 발생할 경우 문서를 폐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주무부처는 채용비리 정기 감사를 실시하고, 적발된 곳은 중점 관리기관으로 지정해 집중관리하기로 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상설화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대책에는 채용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안도 담겼다. 지금까지 공공기관 채용 방식은 대부분 재량에 맡겨 있었다. 그러다보니 공고를 제대로 안 하거나 내부 평가위원만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위직의 인사 개입을 손쉽게 만드는 구조다.

개선책으로 전형별 응시자격과 평가기준, 가점요소, 합격배수 등을 모두 공개토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서류와 필기, 면접 등 과정별 외부 평가 위원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최소한 서류 면접은 외부위원 참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특채와 같은 소규모 채용의 경우 전문대행기관을 지정해 외부에서 채용을 대행하는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수사의뢰 및 징계 대상인 170건 중 65% 이상이 소규모 채용이었다는 점을 참고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실시 후 확산하겠다는 복안이다.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책 역시 명문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예비합격자 순번을 부여키로 했다. 억울하게 불합격했을 경우 구제해주기 위한 순번이다. 이의신청도 활성화한다. 현재 330개 공공기관 중 49개 기관만 운영 중인 이의신청 절차를 전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