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세태] ‘외국어 능통자’ 뽑는다더니… 학원수강증 낸 ‘낙하산’ 채용

입력 2018-01-29 19:59 수정 2018-01-29 21:16
공공기관 채용비리 재발방지책 있나

대부분 ‘고위직의 찍어누르기’
작정하고 개입 땐 방법 없어

기관장 압력에서 자유로운
감시의 눈길 있어야 재발 막아

정부, 상시감독 신고체계 구축
채용 전 과정 감사인 입회하고
적발된 곳 중점관리기관 지정


정부가 29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의 대부분은 ‘고위직의 찍어 누르기’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채용비리 실태를 보면 고위직이 작정하고 채용 등 인사에 개입하고 나설 경우 아랫사람이 배겨낼 재간이 없는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위직이 미는 특정인을 뽑기 위해 인사지침을 무시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는 상경계열 박사를 뽑겠다고 공고하고선 전공이 전혀 다른 특정인을 서류전형에서 합격시켰다. 지방공공기관인 제주4·3평화재단은 외국어 능통자를 채용한다면서 학원수강 확인서만 제출한 특정 응시자에게 서류심사 합격의 영예를 안겼다. 실력과 상식보다 고위직의 입김이 중요했던 셈이다.

공공연히 채용비리가 발생해온 원인으로는 허술한 감시 체계와 불투명한 채용 과정이 꼽힌다. 기관장의 압력에서 자유로운 감시의 눈길이 있다면 부정을 저지르기 쉽지 않았겠지만, 그런 체계가 부족했다. 그래서 정부의 재발방지책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졌다.

우선 상시 감독과 신고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현행 일회성 채용실태 점검으로는 비리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채용 전 과정에 감사인이 입회하고 참관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 인사부서뿐만 아니라 독립적인 감사부서도 채용 관련 문서를 관리토록 하는 이원화 관리를 추진한다. 비리가 발생할 경우 문서를 폐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주무부처는 채용비리 정기 감사를 실시하고, 적발된 곳은 중점 관리기관으로 지정해 집중관리하기로 했다.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상설화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대책에는 채용과정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는 안도 담겼다. 지금까지 공공기관 채용 방식은 대부분 재량에 맡겨 있었다. 그러다보니 공고를 제대로 안 하거나 내부 평가위원만으로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고위직의 인사 개입을 손쉽게 만드는 구조다.

개선책으로 전형별 응시자격과 평가기준, 가점요소, 합격배수 등을 모두 공개토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또 서류와 필기, 면접 등 과정별 외부 평가 위원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최소한 서류 면접은 외부위원 참여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특채와 같은 소규모 채용의 경우 전문대행기관을 지정해 외부에서 채용을 대행하는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수사의뢰 및 징계 대상인 170건 중 65% 이상이 소규모 채용이었다는 점을 참고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범실시 후 확산하겠다는 복안이다.

채용비리 피해자 구제책 역시 명문화하기로 했다. 대표적인 방안으로는 예비합격자 순번을 부여키로 했다. 억울하게 불합격했을 경우 구제해주기 위한 순번이다. 이의신청도 활성화한다. 현재 330개 공공기관 중 49개 기관만 운영 중인 이의신청 절차를 전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