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유족, 日에 손배소
日 정부는 무시… 재판 공전
우리 재판부 권유에 따라
외교부에 해결 방법 묻자
“법원행정처에 문의해야”
두 달 만에 ‘답변회피’ 회신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공전(空轉)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 할 일을 해나가겠다”고 공언한 것과 배치된다는 지적이 많다.
위안부 피해자 곽예남(93) 할머니 등 생존 피해자와 사망 피해자 유족 21명은 2016년 12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30억3000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무시 전략을 고수하면서 재판 진행 자체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측은 지난해 8월 법원행정처를 통해 일본 외무성에 소장을 송달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은 “헤이그송달협약 제13조에 따라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해 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장을 법무성에 전하지도 않은 채 돌려보냈다. 헤이그송달협약이란 협약 체결국 간에 민사(民事) 또는 상사(商事) 재판을 진행할 때 관련 서류의 해외송달에 관한 협약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오선희)는 지난해 8월 열린 첫 재판에서 “송달반송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다른 외교경로를 통한 송달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외교부 측에 사실조회신청을 해볼 것을 법률대리인단에 권유했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상희 변호사 등은 같은 해 11월 외교부에 사실조회서를 보냈다. 외교경로를 통한 해결방법이 존재하는지, 방법이 있다면 외교부가 어떤 절차를 거칠 것인지 등을 묻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외교부 측은 두 달 만에 보낸 회신서에서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고지 받은 사실이 없으며,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는 소관부처인 법원행정처에 문의하길 바란다”고 답변을 회피했다.
이 변호사는 29일 “피해 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하겠다는 정부의 말과는 너무 다른 태도”라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교경로를 통해 일본 정부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노력해보겠다는 의지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는 “국제민사사법공조 예규에 따라 재판부가 추가 송달을 실시하거나, 외교부를 통해 일본 정부의 협조를 요구하는 요청서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9일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한 재협상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를 돕겠다. 일본 정부도 관련 노력을 계속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단독] 정부,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은 말뿐?
입력 2018-01-29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