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이용 반칙 난무 공공기관 채용 비리
심사위원에 원서 미리 전달하거나
면접자로 나서 점수 몰아주기도
점검대상 5곳 중 4곳 비리발생
비리 주도한 8개 기관장 해임
전북대병원은 특정 지원자의 응시원서를 심사위원들에게 미리 제공했다. 사실상 이 사람을 뽑아 달라는 ‘사인’이었다. 서울대병원은 한술 더 떠 서류전형에서 합격 배수를 조정해 특정인을 합격시킨 뒤 면접에서 면접위원 전원이 고득점을 주는 방식으로 채용비리를 저질렀다.
면접위원이 못 미더웠는지 기관장 등 고위 인사가 직접 개입한 경우도 많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고위 인사는 면접장에 들어와 자신이 미는 지원자에게 우호적 질문을 쏟아부으면서 공정한 면접을 방해했다. 항공안전기술원과 한국벤처투자 고위 인사는 아예 면접에 직접 참여해 다른 지원자보다 높은 점수를 줬다.
채용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계약직으로 특정인을 뽑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지능형 비리도 적발됐다. 정부법무공단은 채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지원자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은근슬쩍 정규직으로 임용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고위 인사의 지인을 ‘계약직→전문계약직→무기계약직’으로 신분 상승시켰다.
정부가 29일 발표한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최종 결과에 포함된 사례들이다. 정부는 공공기관과 공직 유관단체 1190곳을 점검해 946개 기관·단체에서 모두 4788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점검 대상 5곳 중 4곳에서 채용비리가 발생했고, 비리 건수도 1곳당 평균 5건이나 됐다.
정부는 채용비리에 연루된 임직원에게 무관용 원칙인 ‘원스크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사의뢰 또는 징계 대상에 포함된 기관장 등 임직원 197명은 이날부로 업무에서 배제하고, 향후 검찰이 기소할 경우 퇴출키로 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수사의뢰 대상 33개 기관 가운데 채용비리를 주도한 것으로 드러난 8개 현직 공공기관장에 대해서는 즉시 해임 조치에 착수했다. 해임 대상 기관장은 신성철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 김상진 국립해양생물자원관장 등이다. 이들 외에 이미 퇴직한 14명의 공공기관장도 수사를 받고 있다.
정부는 부정 합격자 역시 채용비리 연루자와 동일하게 퇴출 원칙을 적용키로 했다. 부정 합격자 본인이 기소되거나 본인 채용과 관련된 인사가 기소될 경우 채용은 무효화된다. 정부는 특별점검을 통해 중앙 공공기관 50명, 공직 유관단체 29명 등 모두 79명의 부정 합격자를 가려냈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지방 공공기관까지 합치면 부정 합격자는 100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판 결과 기소된 임직원의 유죄가 확정될 경우 각 공공기관은 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방침이다. 반면 정부는 채용비리 피해자가 특정될 경우 원칙적으로 이들을 구제해주기로 했다.
김용진 기획재정부 2차관은 “특권과 반칙 없는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새 정부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 내에 관행처럼 만연한 채용비리 실상을 접하고 충격과 함께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며 “채용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zhibago@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투데이포커스] ‘자격미달’ 특정인, 계약직 뽑아 정규직 전환… ‘반칙채용’ 백태
입력 2018-01-29 18:41 수정 2018-01-29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