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소영] 최저임금과 가상통화

입력 2018-01-29 18:01

얼핏 생각하면 최저임금과 가상통화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러나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최근의 논란과 가상통화 광풍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특별히 배운 것 없고 별다른 능력도 없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 바쳐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 같은 일을 하고 비정규직이나 하도급회사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턱없이 적게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올해 16.4% 인상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1년 내내 일하면 연간 1884만원(월 157만원)을 받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근로자 연평균 임금 3500만원의 53.8%에 불과하다.

이번에 가상통화 광풍에 휩쓸린 사람들을 보면 물론 전문적인 투기꾼들도 있지만 2030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사행성 투자에 쉽게 쏠린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그들에게 ‘공정성’과 ‘분배적 정의’의 가치를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바를 하며 취업 준비 중인 청년들이나 노량진 고시촌 수험생들의 머릿속에 우리 사회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라는 생각은 들어있지 않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가. 우리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노동 이슈가 제1의 국정과제로 오른 적은 없었다.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의 양극화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 썩어 문드러져도 노동정책은 늘 후순위로 밀려 근로자들에게 희생 아닌 희생을 강요해왔다.

우리 사회는 현재 곳곳에 개혁이 시급하다. 그중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소득의 양극화는 최우선순위로 개선돼야 한다. 물론 최저임금 현실화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지만 우리 노동시장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혁적 정책이다. 최저임금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첫 단추를 다시 끼우는 일이고, 당위다. 물론 당위와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의 고통분담이 따른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들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 정부는 노동 편향 정부라고 맹비난하고, 많은 언론도 여기에 포커스를 맞추는 듯하다. 정부가 내놓고 있는 각종 지원 대책에 대하여도 시장에서는 부정적 평가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지난 10년간의 정부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 과감하게 수술용 메스를 들이대지 못했던 탓에 이 정부가 개혁을 둘러싼 진통의 무게에 짓눌려 쩔쩔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들은 갑자기 몇 계단을 한꺼번에 오르니까 숨이 차고 힘들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말로만 노동시장 개혁을 하며 개미가 계단 올라가듯이 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노동시장과 소득의 양극화가 초래해왔던 사회적 갈등과 대립, 보편적 가치의 붕괴, 미래에 대한 투자 대신 가상통화에 투자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할 때에 이 정부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비롯한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해야 한다.

물론 최저임금 정책만으로 소득분배 개선이나 저임금 해소를 일거에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중소·영세기업을 위한 정책들과 더불어 근본적으로 산업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인위적 개입은 오히려 시장을 왜곡시킬 수가 있고 비합리적 규제는 반발을 불러온다. 그러나 정부의 진정성 있고 합리적인 개입은 설득력이 있을 것이고 노사의 자발적 동참을 끌어낼 수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일자리안정자금, 사회보험료 지원, 세제 혜택, 임대료 적정화, 하도급단가 적정화 등의 지원 대책이 실질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비등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의 비난과 정부의 홍보는 현 상황에서 큰 의미가 없다. 대표성 있는 이해관계자들과 정부는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짜내야 한다. 또한 정부는 향후 최저임금인상의 속도조절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김소영(충남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