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전 한국, 구호가 아닌 제도·예산으로 뒷받침해야

입력 2018-01-28 17:58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재난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실감나게 한다. 이번 화재는 안전 법규 미비, 허술한 방재 시설, 초기 대응 미숙 등 여러 허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 제천 스포츠센터 참사에서 지적됐던 문제점들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되풀이됐다.

대형 참사 때마다 정부가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하지만 공허하다. 안전은 구호만으로는 지켜질 수 없다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다. 재난은 호시탐탐 우리의 허점을 노리고 있고, 단시일 내에 안전을 향상시킬 묘책도 없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안전 관련 시설·장비·인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대응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정부와 민간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도 개선을 통해 화재 발생의 원인을 하나하나 줄여나가고 화재 발생 시 신속한 구조와 대피가 이뤄질 수 있도록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소방청이 제천 참사에 대한 문제점을 분석해 마련한 복합건물 화재 재발방지 대책은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건축물 외부 마감 불연재 사용 소급 적용, 불법주차 처벌 기준 강화, 불시 소방특별조사 확대, 민간 소방점검 업체 관리책임 강화, 부족 소방 인력 및 장비 확충, 소방 대응역량 강화 등이다. 화재 예방 및 신속한 구조를 위해 필요성이 제기됐던 대책들이다. 이런 대책들이 계획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행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와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특히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소방안전 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기존 건축물에도 강화된 기준을 단계적으로 소급 적용해 나가야 한다. 이번 화재에서 절감했듯 일반 병원도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핵심적인 소방시설은 세제, 보조금 등을 통해 건물주의 비용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

안전 기준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장 감독도 강화해야 한다. 요양병원에 대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3년 유예 기한이 오는 6월로 다가오는데 설치를 미루는 병원이 많다고 한다. 다중이용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초기 대응이 잘못되면 작은 화재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화재 대응 매뉴얼을 숙지하도록 해야 한다. 국회도 소방차 통행을 위한 주정차 특별금지구역 지정 등을 의무화하는 등의 소방안전 관련 법안 입법화에 속도를 내야겠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법안 5건이 2월 임시국회에서 차질 없이 통과돼야 한다. 정부가 앞장서야겠지만 개인들도 안전문화 실천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재난은 사소한 방심에서 시작된다. 생명과 재산은 스스로 지키겠다는 안전의식을 하루빨리 뿌리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