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홍관희] 쌍중단 유혹 차단 시급하다

입력 2018-01-28 17:56

북한의 ‘평창 참가’ 이후 올림픽 성격이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국내에선 정부의 대북 태도가 비굴하다며 평양올림픽이라는 반발이 거세게 일어나 평화올림픽 주장과 검색어 경쟁을 벌였다. 세계적 스포츠 축전이어야 할 올림픽이 적나라한 남남 갈등의 현장으로 변했다. 뿐만 아니라 올림픽이 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적(북한)과 안보 동맹(미국) 간 정면충돌 무대로 바뀌고 있다. 방한을 앞둔 마이크 펜스 부통령 팀은 “김정은이 평창의 메시지를 납치할 수 있다”면서 “핵을 갖고 대화하자는 북한의 술책에 더 이상 속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남북 대화를 연장해 미·북 대화로 연결하려는 문재인정부 입장이 무색해졌다.

북한이 ‘핵 포기 불가’를 공개 표명하면서 평창올림픽에 참가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미 훈련 연기’라는 전리품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숙원인 ‘한·미 훈련의 영구 중단’을 달성하려 한다. 남북 대화에 목마른 문재인정부를 최대한 이용해 한·미동맹을 파괴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북한의 음모를 꿰뚫어보는 미국은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 원칙을 고수한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24일 “정전상태인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용인할 수 없다”고 못 박아 북핵 불용 의지를 다짐했다. 이날 미 재무부는 북한의 원유 확보 책임 부처인 원유공업성 등을 독자 제재 명단에 추가함으로써 북한의 원유 밀매를 정면 조준했다. 최고 수위의 압박을 견지하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국무부는 미·북 직접 대화는 시기상조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런 구도를 허물고 한국 정부가 미·북 대화를 미국에 권고한다면 핵 위협의 당사자가 왜 이럴까 하며 당혹해할 것이다.

남북 대화를 미·북 대화의 마중물이 되게 하겠다는 문재인정부의 의도는 미국의 대북 압박 전략의 높은 장벽에 부닥친 상태다. 비핵화 진전이 없음에도 ‘평창 이후’로까지 무리하게 대화지상주의로 흐르면 뜻밖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훈련 중단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현 정세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아마추어 발상이며 규탄 받아야 할 반(反)안보 행태다. 이 시점에서 ‘쌍중단’(한·미 훈련과 북한 핵 개발 동시 중단)에의 유혹을 차단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당초 중국이 제시한 쌍중단은 대한민국의 안보와 존립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는 근본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한·미 훈련을 중단한다고 해서 핵 개발을 중단할 북한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쌍중단은 한·미 훈련만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게 된다. 또한 현 단계에서 핵 개발 중단은 북한에 큰 의미가 없다. 이미 20개 이상의 핵폭탄을 보유했고, 스커드·노동 등 중·단거리 미사일에 핵 탑재가 가능해 한국과 일본열도에 대한 공격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1994년 핵 동결을 내용으로 미·북 제네바 핵 합의가 성사됐으나 북한은 수년 후 우라늄 농축 비밀 핵 개발을 시도해 합의를 무산시킨 전과도 있다.

미국은 쌍중단 거부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나 문재인정부의 입장은 애매하다. 지난해 12월 정권 실세라 할 이해찬 전 총리는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 쌍중단에 대한 합의가 있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주었다. 만약 문재인정부가 한·미 훈련에 제동을 걸며 쌍중단 입장으로 선회하면 한·미동맹은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고 미국은 독자적인 북핵 해결의 길로 나서게 될 것이다. 이미 한·미동맹의 이상 전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정부의 미·북 대화 유인은 북한의 위장평화 전략에 말려들 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다. 북한은 월남 패망 이후 미국과의 양자 대화를 벤치마킹하여 어떻게든지 ‘평화협정→미군철수’ 로드맵을 실현시키려 한다. 한반도 평화는 신뢰할 수 없는 북한과의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미동맹에 입각한 안보 역량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한순간이라도 이 기본 원칙을 망각하면 재앙이 문을 두드리게 된다.

홍관희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