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의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지 3개월 만에 다른 시중은행들에서도 채용비리 정황이 대거 발견됐다. 은행들은 사외이사 자녀를 통과시키려고 서류전형 합격 인원을 늘리는가하면 명문대 출신을 뽑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작했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지난해 말 ‘자체 점검한 결과 채용비리 사례는 없다’고 보고했었다.
금융감독원은 국내은행 11곳의 신입직원 채용과정을 검사한 결과 총 22건의 채용비리 정황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달부터 두 번에 걸쳐 해당 은행들의 2015년 이후 채용과정을 들여다봤다. 따로 제보 받은 건은 2015년 이전의 경우라도 점검했다. 우리·산업·기업·수출입·씨티·SC제일은행 6곳을 제외한 모든 시중·지방·특수은행이 점검 대상이었다.
사외이사·임직원·거래처의 자녀나 지인을 특혜 채용한 사례는 9건이 발견됐다. A은행은 전 사외이사 자녀가 서류전형에서 성적이 합격선에 걸리자 전형 합격자 수를 늘렸다. 해당 지원자는 결국 최종 합격했다. B은행은 사외이사 지인 등이 필기전형과 1차 면접에서 낮은 점수를 받자 공고에 없던 ‘글로벌 우대’를 이유로 통과시켰다. 이후 임직원 면접에서 최고 등급을 주고 최종 합격시켰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해외 명문대를 나온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면접점수를 조작한 경우도 7건 적발됐다. B은행은 명문대 출신 지원자 7명이 불합격 점수를 받았는데도 임원면접 점수를 임의로 올려 합격 처리했다. 이 때문에 수도권 등 다른 대학 출신 지원자 7명은 합격 점수를 받았음에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부모가 자녀의 면접을 보는 등 불공정한 전형이 이뤄지기도 했다. C은행의 인사담당 임원은 자녀의 면접에 심사위원으로 들어갔고 해당 자녀는 고득점으로 합격했다. D은행은 정치인 자녀가 회사에 지원한 사실을 비공식 사전 면담을 통해 알아낸 뒤 채용인원을 임의로 늘려 해당 지원자를 최하위 점수로 합격시키기도 했다. 이외에도 자기소개서에 가족의 직업을 기재하게 하는 등 채용절차 운영상의 미흡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금감원은 채용비리 정황을 검찰에 이관하고 절차상 미흡 사례에 대해선 은행에 제도개선을 지도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 측에선 채용비리에 대해 ‘인재로 보여서 뽑았다’는 식으로 부인하고 있다”며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은행들이 부정 합격자나 피해를 본 탈락자에 대한 자체 조치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인사 담당 임원이 자녀 심사… 무려 22건 채용비리로 얼룩진 은행들
입력 2018-01-26 18:26 수정 2018-01-27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