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굴욕’… 고흐 명작 원했는데, 돌아온 건 ‘황금변기’

입력 2018-01-27 05:05

백악관에 걸려고 요청하자
구겐하임미술관은 거절
대신 배금주의 풍자 작품 제안

작가 “장기 임대하고 싶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해 9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의 유화 ‘눈 내린 풍경’(1888년)을 빌려 달라고 요청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머무는 공간을 장식할 용도였다.

그러나 구겐하임미술관은 고흐 작품 대신 마우리치오 카텔란(58)의 ‘아메리카’(2016년)를 빌려줄 수 있다고 회답했다. ‘아메리카’는 실제 작동되는 좌변기에 18캐럿짜리 금을 입힌 작품이다. 미국의 지나친 배금주의를 풍자한 설치미술을 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의 방에 갖다 놓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미술관 수석큐레이터 낸시 스펙터와 백악관 관계자 사이에 오간 이메일을 입수해 25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본래 세간을 금으로 장식하는 걸 좋아해 이 ‘황금변기’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술관의 대응이 조롱을 담은, 언중유골의 제안임은 분명해 보인다.

스펙터는 백악관에 보낸 답장에서 “작가도 이 작품을 백악관에 장기 임대하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카텔란은 풍자가 가득한 도발적인 작품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예술가다. 운석을 맞아 쓰러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아홉 번째 시간·1999년), 밀라노 증권거래소 앞에 놓인 거대한 가운뎃손가락(L.O.V.E.·2011년) 등이 유명하다.

스펙터는 지난해 미술관 홈페이지에 ‘아메리카’ 소개글을 올렸다. 그는 이 작품을 가리켜 “트럼프 시대의 황금변기”라며 “우스우면서도 우리 시대의 리얼리티를 따끔하게 꼬집는다”고 평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 SNS에 “슬퍼하지 말고 혁명을 준비하자”고 썼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