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피해 왜 컸나
유독가스 3분만 마셔도 심정지
골든타임 짧아 희생자 규모 키워
매트리스 등 가연성 물질 많아
유독가스 더 심했을 가능성
의료진 초동대처 부실도 지적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단 한 번의 화재로 37명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화재 규모가 작고 비교적 빠른 시간에 진화가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희생자 규모가 이례적으로 크다. 2014년 5월 21명의 사망자를 낸 전남 장성군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사고와 겹쳐지면서 ‘요양병원 화재 참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난 불은 2층으로 옮겨 붙기 전에 진화됐다. 소방당국은 오전 7시32분 신고 접수 후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고, 9시29분 초기 진압을 완료했다.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에 있던 환자들도 대부분 이송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희생자가 많이 나왔을까?
화재 현장이 병원이었다는 점이 우선 거론된다. 병원은 고령자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밀집한 장소라는 점에서 화재 등 각종 재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천재경 밀양보건소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세종병원에는 중환자와 노인 환자가 많았고 호흡장애 환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사망자 37명 중 80세 이상이 25명이었고, 70대도 6명이나 됐다.
사망자 대부분은 질식사로 밝혀졌다. 화상에 의한 사망자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화재 발생 시 가연성 물질이 타면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3분만 마시면 심 정지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수건이나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아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20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화재 사고에서는 화상보다 질식사로 사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등록된 화재 시 사망 원인 통계를 보면 전체의 60% 이상이 연기에 의한 질식사다.
노인이나 중환자들은 유독가스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세종병원 희생자들 중에는 휠체어로 이동해야 하거나 병상에 누워있는 경우도 많았다. 최민우 밀양소방서장은 “병원과 요양병원에 있는 환자 대부분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피해가 컸던 이유에 대해서 “자력 대피가 힘들지 않나”라며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자력으로 대피하기가 어렵다. 또 몸이 허약한 상태에서 유독가스를 마시게 되면 일반인보다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1층에서 발생한 불길이 2층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연기는 건물 전체를 휘감을 정도로 심했다. 소방대원들은 현장 도착 직후 연기가 너무 심해 건물 진입을 하지 못했다. 사망자는 1층 응급실은 물론 2층 병실에서도 많았고, 5층 병실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병원에 매트리스, 이불, 소파, 커튼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아서 유독가스를 더 많이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응급실에서 불이 났다면 매트리스, 커튼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았다고 볼 수 있다”면서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환자복이나 매트리스 등의 방염 처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산소호흡기 등 생명유지 장치에 의존하던 중환자들은 화재로 의료기기 작동이 멈춰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기가 끊기면서 자동문이 열리지 않아 병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경우나 엘리베이터 속에 갇혀서 정신을 잃은 경우도 확인됐다. 현장에서 사망한 인원이 얼마인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병원 이송 중 또는 이송 직후 숨을 거뒀다. 밀양소방서는 사망자 중 25명이 병원 도착 후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2014년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참사와 닮았다. 당시 입원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고 8명이 부상을 당했다. 화재는 10분 만에 진화됐지만 연기가 건물 전체로 퍼지면서 21명이나 사망했다.
김유식 한국국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각 층마다 화재를 피할 수 있는 대피 공간이 필요하다”면서 “방화구역을 만들어서 못 나가더라도 유독가스 흡입 등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병원에는 화재 발생 시 물을 뿜어내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 측에서는 세종병원이 법적으로 의무 설치 기관에 해당되진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스프링클러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화재 당시 세종병원에 근무 중이던 의료진이 적절하게 화재에 대응했느냐도 확인해야 할 문제다. 평소에 화재 대비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는 병원이 많기 때문이다.
글=김남중 손재호 기자 njkim@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그래픽=이석희 기자
[밀양 화재] 불보다 치명적인 유독가스, 거동 힘든 환자 덮쳐
입력 2018-01-27 05:05 수정 2018-01-27 0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