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가 또 일어났다. 29명의 사망자를 냈던 지난달 21일 충북 제천 화재 이후 불과 한 달여 만에 경남 밀양 세종병원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3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8년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망 40명)에 버금가는 참사다. 화마가 건물을 통째로 삼키고 순식간에 늘어나는 사망자 뉴스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 숫자가 수시로 정정되는 혼선까지 벌어졌다. 반복된 재난과 부실한 대응에 국민들의 불안감과 분노도 커지고 있다.
불은 26일 오전 7시32분쯤 병원 1층 응급실 옆 간호사 탈의실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 당국은 출동 2시간 만에 비교적 빨리 화재를 진압했으나 안타깝게도 대형 인명 피해를 막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장기요양이 필요한 고령 환자들이 많은 병원에서 나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불과 함께 연기 유독가스가 급속하게 번지면서 몸이 불편한 고령 환자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화마에 희생됐다. 응급실에서 불이 난 것도 사상자를 키운 요인 중 하나다. 소방당국이 1차로 요양병원으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고 거동이 힘든 환자 94명을 대피시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사고 역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는 물증이 드러나고 있다. 5층짜리 의료시설인 이 병원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무리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라지만 호흡장애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많은 다중이용시설임을 감안하면 마땅히 설치됐어야 한다. 향후 조사에서 화재 예방과 초기 진화 시스템 등이 제대로 작동됐는지도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 소방 관련 법규가 지켜졌는지도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그토록 외쳤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낚싯배와 유조선 충돌, 타워크레인 전복, 이대 목동병원 미숙아 집단 사망, 제천 화재, 포항제철소 질소가스 누출 등 하루가 멀다 하고 한심한 사고가 터지고 있다. 장소만 옮겨졌을 뿐 안전 의식과 시스템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지만 늘 그때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 안전을 정부의 핵심 국정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규모 재난과 사고에 대해서는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상시적인 대응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했다. 모든 구성원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정부는 소방 여건 개선, 취약 건물에 대한 제도 정비 등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도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는 자세를 더욱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참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사설] 이번엔 밀양 참사… 안전한 나라는 요원한가
입력 2018-01-26 18:02 수정 2018-01-26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