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인사이드] 1심 15년형→2심 무죄… 11년 전 수원 카페 여주인 살해사건

입력 2018-01-25 21:55 수정 2018-01-26 00:16
사진=뉴시스

장기미제사건 분류됐다가
9년 만에 DNA 분석해 검거
1심은 간접증거 인정했지만
항소심은 사체 온도 감안
사망시각 다르다고 판단


11년 전 발생한 ‘수원 카페 여주인 살인사건’의 범인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은 과학수사기법으로 장기미제 사건을 해결했지만, 과학적 증거는 법원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도 됐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함종식)는 25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모(37)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중대 범죄인 살인죄의 경우 간접증거만 있다면 더욱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씨는 2007년 4월 24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 여주인 이모(당시 41세)씨를 살해한 혐의로 2016년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 당시 경찰은 카페 싱크대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의 DNA를 바탕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2013년 7월 강도상해 혐의로 체포된 박씨의 DNA가 6년 전 담배꽁초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박씨는 처음에 범행을 자백했지만, 이후 “카페에 간 것은 맞지만 여주인을 죽이진 않았다”며 말을 바꿨다.

장기미제로 분류됐던 사건은 2016년 검찰이 기록을 재검토하다 사건 현장에서 피 묻은 두루마리 휴지가 발견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전기를 맞았다. 휴지를 보관하던 국과수에 DNA 분석을 의뢰한 결과 박씨와 이씨의 혈흔이 섞여 나왔다.

1심은 이런 간접증거들을 종합해 박씨에게 중형을 내렸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핵심은 사망 추정 시간이었다. 1심은 카페 종업원의 진술 등을 근거로 오전 4시30분에서 오전 8시 사이에 범행이 일어났다고 봤다. 그러나 2심은 부검 당시의 이씨 곧창자(대장의 끝 부분) 온도에 집중했다. 재판부는 “곧창자 온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씨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11시에서 낮 12시 사이”라며 “그렇다면 오전 4시30분∼8시 범행이 일어났다는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고 말했다. 이어 “낮 12시까지 피고인이 범행 장소에 있었다는 점을 증명할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왜 피 묻은 휴지가 2016년에서야 등장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 크기가 박씨 발사이즈와 맞지 않는 점, 자백 당시 경찰이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지 않은 점 등을 무죄의 근거로 들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