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여기자 잠입 폭로
33년 전통 남성 전용 행사
서빙하는 여성만 130여명
손님들, 더듬고 희롱 발언
새벽엔 은밀한 2차 파티도
아동가족부 차관 등 참석
영국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자선파티에서 여성들을 고용해 술접대를 시키고 성추행을 한 사실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여성들을 구경거리로 삼은 남성 전용 자선모금행사’라는 제목으로 “비밀스러운 턱시도 만찬은 성적 추행과 희롱이 넘쳐났다”고 보도했다. 여기자 매디슨 매리지는 조력자 1명과 함께 지난 18일 런던 도체스터 호텔에서 열린 비공개 자선행사 ‘프레지던츠클럽 자선 만찬’ 현장에 접대부로 위장해 잠입한 뒤 이같은 사실을 폭로했다.
33년 전통의 이 행사는 경매를 통해 아동병원 후원금 등을 마련해 왔다. 행사에는 오직 남성만 초대받았다. 올해도 마이클 셔우드 전 골드만삭스 부회장, 나딤 자하위 아동가족부 차관 등 유력인사 360명이 참석했다.
주최 측은 여성 130여명을 행사진행요원으로 고용했다. 주로 학생들이 많았고 댄서나 모델, 배우도 있었다. 이들은 ‘예쁘고, 늘씬할 것’ 그리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달라붙는 검은색 의상과 하이힐을 요구받았다. 비밀유지 각서에 서명한 접대 여성들에게 지불된 대가는 290달러(약 30만원)와 택시비였다.
문제는 난잡한 행사 분위기였다. 여성들은 자기소개와 함께 테이블에 할당됐다. 무대에선 토플리스 차림의 댄서들이 공연을 펼쳤다. 19세에 불과한 한 참석자는 “한 나이든 손님이 ‘직업여성이냐’고 물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대다수 테이블이 마찬가지 분위기였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가슴과 허리, 다리를 만져댔고, 자신의 중요 부위를 노출하기도 했다. 잠입한 기자 역시 키스를 하려 달려드는 등 추행에 시달렸고, 심지어 ‘호텔방으로 함께 올라가자’는 제안까지 받았다. 행사는 새벽 2시까지 진행됐지만 더 은밀한 ‘2차 파티’는 호텔 내 작은 룸에서 참석자와 여성들이 더 밀착한 가운데 진행됐다.
실상이 폭로되자 정·재계는 발칵 뒤집혔다. 영국 총리실은 현직 차관이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자 “차관이 불편한 심정에 곧 자리를 떠났다”고 해명했다. 행사의 공동 주최자인 데이비드 멜러 교육부 비상임이사는 즉각 사임했다. 사회를 맡았던 유명 코미디언 데이비드 윌리엄스는 “내 순서 후 바로 자리를 떠 직접 목격하진 못했다”며 거리를 뒀다.
주최 측은 성명을 통해 “행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경악했다. 사실 여부를 파악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행사를 폐지하고, 그간 모인 기금을 전액 기부 또는 위탁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복수의 병원들은 “엮이고 싶지 않다”며 기부금을 반납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英 정·재계 거물들의 ‘성희롱 자선파티’ 파문
입력 2018-01-26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