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실태조사에 교수사회 ‘반칙’ 적나라
단순작업 몇번 시키고 등재
이번 82건은 자진신고한 것
전체보면 빙산의 일각 불과
직접 자녀 넣는 건 하수 수법
친한 교수끼리 품앗이 만연
특기자전형이 ‘통로’ 가능성
연구윤리 위반 입증 관건
입학 취소까지 쉽지않을 듯
교수 자녀란 이유로 유명 학회지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이를 입시에도 활용해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반칙’은 국민일보 연속보도(2017년 12월 5일자 1면 등)를 통해 처음 알려져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교육부가 조사에 나서 82건의 유사 사례를 확인했다. 교육부 조사는 아직 초기 단계다. 신고하지 않은 사례는 없는지, 자녀가 실제 논문 작성에 기여했는지, 대학입시에 이를 활용했는지까지 확인하려면 ‘산 넘어 산’이다.
낯 뜨거운 사례들
국민일보가 취재한 교수 18명 중 대다수는 자녀에게 참고문헌 검색이나 실험기구 세척, 영어 번역 등 단순작업을 시킨 뒤 논문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방식을 썼다.
2009∼2010년 당시 성균관대 의대에 재직 중이던 A교수는 두 차례에 걸쳐 고등학생 아들을 자신의 논문에 저자로 기재했다. 의대 진학을 희망하던 아들은 이런 연구 실적을 생활기록부에 적었고, 수시 전형을 통해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다. A교수는 “아들이 방학 동안 주 3회 병원에 나와서 참고문헌을 찾아오고 초록을 번역하는 작업을 맡았다”며 “기여를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여대 화학과 B교수는 아예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대학원생에게 고등학생 딸을 지도해 달라고 맡겼다. 여름방학 동안 딸이 연구실로 출근하면 대학원생이 연구 내용을 설명하고 실험을 보조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딸은 해당 대학원생이 제1저자로 작성한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B교수는 “딸이 독자적으로 뭔가를 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부당한 과정을 거치진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수가 자녀 학교의 연구와 논문 지도 프로그램(R&E 프로그램)을 맡아 지도하고 논문에 이름을 넣은 경우도 눈에 띈다. 16개 대학에서 39건이 적발됐다.
자진 신고…“빙산의 일각”
이번 교육부 조사로 드러난 82건은 대학과 교수가 직접 신고한 숫자다. 대학 측에서 인지하지 못하고 교수도 자진신고하지 않은 경우 이번 조사에선 제외됐을 가능성이 높다. 학계 안팎에서 82건이란 숫자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교육부는 몇몇 대학에서 자체 조사에 어려움을 겪자 조사 기한을 늘려주기도 했다. 한 서울시내 사립대 관계자는 “기사에 학교 이름이 나와 있어 일단 교수들에게 자진 신고를 부탁했다”며 “기한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아 교육부에 애로사항이 있다고 보고했다”고 토로했다. 이 대학은 조사 기한이 4일 연장된 후에야 교수 4명의 명단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지방 국립대에 재직 중인 C교수는 “우리 대학에도 공문이 왔다고 들었다”면서도 “교수들에게 해당사항이 있으면 직접 신고하라고 하던데 누가 하겠느냐. 나 같아도 안 한다”고 비판했다.
동료 교수의 논문에 자녀를 저자로 올린 경우도 이번 조사에서 제외됐다. 서울대 D교수는 “자녀를 자신의 논문에 직접 올리는 건 하수들의 수법”이라며 “친한 교수들끼리 서로 이름을 넣어주는 행태가 더 만연해 있다”고 꼬집었다.
교육부 조사, 입학 취소까지 갈까
논문 작성자로 이름을 올린 교수 자녀의 입학 취소가 가능하려면 연구윤리 위반 여부부터 입증해야 한다. 교육부가 확인한 82건의 대부분은 “제 자녀는 논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연구에 도움을 줬다”고 주장하는 교수들의 방패를 뚫어야 한다. 단순 업무를 공헌·기여로 인정할 경우 82건 모두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또 연구 부정행위를 대학들이 자체 검증하게 되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문제의 논문들은 주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특기자전형에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부는 2014학년도부터 논문 실적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에 학종에선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나 교사추천서 등을 통해 간접 활용됐을 가능성까지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입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2014학년도 이전에는 문제의 논문들이 대입 실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기자전형의 경우 논문 실적을 대놓고 요구하는 곳도 있기 때문에 부정한 논문이 대학에 진학하는 통로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학종이나 특기자전형이 평가자의 주관을 점수화해 당락을 가르는 시스템이란 점이다. 논문이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기 쉽지 않다. 또 부정한 논문 실적으로 해외 대학으로 진학했을 경우도 적발과 처벌이 어렵다.
글=이도경 이재연 기자 yido@kmib.co.kr, 그래픽=공희정 전진이 기자
참고문헌 찾고 도구세척 했다고 ‘공저자’… ‘논문 반칙’ 실태
입력 2018-01-25 19:06 수정 2018-01-25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