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란의 파독 광부·간호사 애환 이야기] <4> 손영숙 집사

입력 2018-01-27 00:01
손영숙 집사(가운데)가 1974년 독일 킬 시립병원에서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갖고 있다. 손영숙 집사 제공
손 집사(앞줄 오른쪽)가 2015년 3월 독일 본에서 열린 내적치유 세미나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영숙 집사 제공
독일 CLW교회 청소년 담당 목회자인 막내 사위 지미 홍 목사. 손영숙 집사 제공
지난해 10월 한국의 요양병원에서 어머니와 함께한 손 집사. 손영숙 집사 제공
박경란 칼럼니스트
스무 살 무렵엔 인생의 특별한 봄이 올 거라 기대했다. 바람이 살포시 지나가면 꽃이 곧 필 거라 생각했고 햇빛이 머물다 지나가면 열매를 기대했다.

1972년, 스물두 살의 파독 간호사 손영숙(67) 집사도 찬란한 봄날을 꿈꾸며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알래스카 상공을 지나며 비행기 아래로 보이던 구름안개 자욱한 하늘이 인생임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련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교련과목은 딱딱한 모래알을 씹는 느낌처럼 불편했다. 그때 마침 독일에 간호사로 간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편지 속에 비친 독일의 모습은 한마디로 따스한 봄날이었다. 홀어머니에 1남2녀 중 장녀인 그에게 파독 간호사는 가난한 집을 살리는 비상구처럼 보였다. 훌쩍이는 어머니에게는 “돈 많이 벌어 3년만 있다 돌아오겠다”고 당차게 선언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독일 북부지역 킬(Kiel)이란 도시였다. 낯선 땅에 도착한 그에게 언어 스트레스와 향수병이 몰려왔다. 다행히 같은 병원에 한국인 간호사 7명이 함께했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기숙사에 몰려 앉아 한국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해먹으며 이국생활의 설움을 달랬다.

독일생활 3년. 파독 광부로 일하던 곽민필씨와 결혼했다. 3남매를 낳으면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은 점차 멀어져 갔다. 이방인으로 불투명한 미래를 두려워하던 그에게 가족은 또 다른 행복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눈부신 햇살만 있는 게 아니었다. 82년 남편이 간경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손 집사에겐 가혹한 형벌이었다.

낮엔 남편 간호, 저녁엔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녹초가 됐다. 병원에서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밤 근무를 자청했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병원 의자에 앉아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호된 꾸지람도 받았다. 그때 같은 병원에 근무하던 한국인 간호사에게서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됐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간 질환이 나은 간증집을 건넸고, 다른 지인을 통해 성경책도 선물 받았다.

덕분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신기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교회에 갔다. 사실 친정어머니는 불교신자였다. 어릴 때부터 자녀들 기도를 위해 절을 찾은 이였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난 손 집사였기에 하나님은 단지 기복신앙의 대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생각을 바꾸셨다.

“한 번은 꿈을 꿨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때 ‘하늘나라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날은 꿈에 시어머니가 나타나셨길래, 제가 ‘어머니, 아들이 이미 나았으니 걱정 마시라’고 이야기했는데 너무나 생생했어요.”

손 집사는 말씀을 펼쳐들었다. 기도와 예배에 집중했다. 정결한 몸으로 나아가고자 금식기도도 시작했다.

“병원 근무하면서 금식을 밥 먹듯 했어요. 하나님께 피 끓는 심정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마침내 남편의 병을 치료하셨다. 은혜에 감격해 하나님과의 더 깊은 만남을 사모했다. 근무지인 병원은 그의 예배장소이자 기도처였다. 힘들 때마다 “성령님, 함께 일해주세요”라며 도우심을 구했다. 하나님은 성령의 임재를 체험케 하셨다. 독일인 수간호사와 기도시간을 가지며 전도의 불을 지폈다.

그는 자신의 열매인 자녀의 영적 성장에도 주목했다. 경건의 훈련을 위해 매일 성경말씀을 함께 쓰며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파주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시차 적응할 사이도 없이 밤낮으로 기도했다. 아이들은 시멘트 바닥에서 자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3일간 금식기도를 마치고 찾아간 곳은 손 집사의 외할머니 댁이었다. 외할머니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외할머니는 손녀의 간절한 기도와 찬양을 통해 주님을 영접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불교신자인 어머니와 이모 또한 하나님을 만났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제게 주신 음성입니다. 부족한 한 사람을 통해 가족을 구원하게 하시니 감사함밖에 없어요.”

현재 그는 독일 본(Bonn)에 위치한 ‘CLW(Center of the Living Word)’ 인터내셔널 자유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이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을 하는 지미 홍 목사가 막내 사위다. 의사이자 사모인 딸과 사위 홍 목사는 현재 독일 한인2세 청소년 사역자로 활동한다. 청소년 미션캠프인 ‘JJ’(Juenger Jesu=예수님의 제자들)의 강사로 독일 청소년에게 영혼의 길잡이 역할을 감당한다.

삼남매는 손 집사의 기도로 성장했다. 현재 장남은 독일은행 펀드매니저로, 장녀는 현대그룹의 과장으로, 막내딸은 본대학 외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손 집사는 간호사 출신의 장점을 살려 CLW교회 안에서 내적치료 상담 및 기도회를 돕고 있다. 질곡 많은 인생을 걸어왔지만 지금 그의 삶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편안하고 충만하다.

박경란<재독 칼럼니스트·kyou7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