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효율과 효과

입력 2018-01-26 00:01

‘효율’과 ‘효과’는 뜻 차이가 정확히 구분돼 사용되는 건 아니지만 각자 독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효율적(efficient)’이란 표현은 투자에 대한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결과가 발생하는 비율을 말한다. 이는 비용과 낭비 및 불필요한 노력을 최소화하는 행위와 연관된다. 물리학적으로 효율은 기계의 일한 양과 공급되는 에너지 비율로 결정된다.

‘효과적(effective)’이란 표현은 궁극적으로 의도한 결과가 창출되는 경우에 사용된다. ‘어떤 목적을 지닌 행위에 의해 드러나는 보람이나 바람직한 결과’라는 사전적 정의가 그 뜻을 잘 담아낸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선교분과는 얼마 전 ‘커넥션스(Connections)’라는 정기간행물을 통해 교회와 선교가 효율보다는 효과를 지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역적 시도나 프로젝트가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를 냈다고 그 방법을 정도(正道)인 양 서둘러 채택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장기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일관성과 지속성이 검증된 방법들 가운데 성경 원리에 부합하는 것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경 원리에 반하는 어떤 방법을 쓰면 교인 수가 신속히 증가한다는 식의 선동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어느 약재가 특정 지병에 약효가 있어 보여도 즉시 시중에 유통시킬 수 없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대상에게 실험한 결과 부작용 없이 일관되고 지속적인 효험이 있다는 검증을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락을 받아야 비로소 제약회사에서 생산해 약국에서 유통될 수 있는 논리와 유사하다.

효율 자체는 긍정적 가치다. 하지만 효과를 배제한 효율주의는 장기적으로 역효과를 내는 장해물(障害物)이 될 수 있다. 현대 목회와 선교는 그간 지나치게 단기적 효율을 추구하는 경향, 즉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빗나간 발상에 빠져 있었다. 단기간에 가시적 결과를 내면 신바람이 나고 목회와 선교 열기를 지속시키는 긍정적 요인이 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굳이 비효율을 추구할 이유는 없지만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단기적 열매(개종)가 아닌 장기적 변화(회심과 제자도)를 요구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도 교회에 모였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일부라도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는지 여부가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의 윌로우크릭 교회가 수년 전 심층조사를 거친 후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가 “우리는 실패했다”고 충격적인 결과를 발표했다. 그 지역교회가 종교 관심자나 구도자를 끌어 모으는 데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 공동체가 되는 일에 실패했다는 정직한 고백이었다.

커넥션스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에서 가장 강력하고 신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10대 교회운동’이 성경적 정통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위험한 유형이라고 한다.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한 교회 지도자는 최근 ‘자신은 성령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온 사람’이라고 선언했다고 한다.

여러 시대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수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한 이단적 주장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이단도 진리도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현상적으로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운동이라도 성경적 원리에서 벗어나면 이단이고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여도 성경적 원리에 부합하면 진리다.

눈짐작으로 길다 짧다 우길 게 아니라 자로 재봐야 하듯, 모든 교회운동과 선교운동의 진위는 성경이라는 표준자(尺)로 재봐야 한다.

상대주의, 주관주의, 다원주의가 판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맞아 새해에도 성경의 가치와 중요성이 새삼스러운 무게로 다가온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

정민영 (전 성경번역선교회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