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이성규] ‘투기중심도시’ 세종시

입력 2018-01-25 17:52 수정 2018-01-25 21:40

40대 두 가장이 있다. 중앙부처 동갑내기 공무원이다. 둘은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다. 하지만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이주하면서 희비가 갈렸다. A과장은 2012년 말 이주 초기에 공무원 특별 분양 아파트에 당첨됐다. 세종시의 아파트는 우선 50%를 공무원들에게 특별 분양하고 나머지 50%를 일반인에게 분양하는 구조다. A과장은 일찍 당첨된 덕에 지난해 그 아파트를 팔아 2억원가량의 시세차익을 챙겼고, 최근에는 일반분양으로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다시 분양받았다. 입주까지 아직 2년이나 남은 아파트는 이미 ‘피(분양권 웃돈)’만 3억원가량 붙었다. A과장은 세종으로 이주한 지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5억원을 번 셈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B과장은 5년째 특별 분양에 당첨된 적이 없다. 경쟁률이 2대 1이든 3대 1이든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B과장의 5년간 부동산 불로소득은 0원이다.

C사무관과 D사무관은 사내 커플이다. 지난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고, 지금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둘은 남남이다. 1년이 넘도록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공무원 특별 분양 아파트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미혼인 경우 각자 지원 자격이 주어지지만 결혼을 하면 1세대 1명으로 확률이 50% 줄어들기 때문이다.

공무원뿐만 아니다. 세종시 아파트를 목표로 몇 년 새 충청권 인구는 급격히 세종시로 유입되고 있다. 3자녀 특별 분양 자격을 얻기 위해 자녀 2명이 있는 세종시 주민이 입양을 했다가 분양권에 당첨된 뒤 입양한 자녀를 다시 파양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린다. 최근 ‘세종의 타워팰리스’라고 광고했던 50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청약 결과가 나왔을 때 시 전체가 들썩였다. 운 좋게 당첨된 공무원은 모든 부서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세종의 또 다른 이름은 행정중심복합도시다. 줄여서 행복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4년여 전 “빚내서 집사라”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의 발언을 전후로 세종시는 ‘투기중심도시’로 변했다. 투기(또는 투자)에 성공한 사람만 행복한 도시가 된 것이다. 단연코 이런 일들이 정상은 아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 40대 가장이 단지 뽑기 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노후생활의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정상적인 결혼을 한 부부가 분양권 당첨을 위해 처녀 총각 행세를 한다는 게, 하늘의 축복이라는 자녀가 아파트 투기의 수단으로 생각되어진다는 것이 우리사회가 비정상임을 반증한다.

문제는 이것이 2018년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20·30대 젊은이들이 빠져든 비트코인은 폭락했지만, ‘부동산 불패신화’는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정부가 오는 4월부터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중과세하고, 연내 보유세 인상을 검토하고 있지만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광풍은 잠잠해질 기미는 안 보인다.

‘난 뭐했나.’ 세종시의 부동산 바람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다. 새해부터 매달 몇십만원씩 더 저축해보겠다고 끙끙 가계부를 쓰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자면 부동산 투자 정보에 한눈 안 팔고 열심히 일한 게 떳떳하다기보다는 미안하다. 땀 흘려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이를 통해 살만한 집을 살 수 있는 나라는 현 시점에서는 순진한 생각이다. 부동산을 통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탐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보통사람들의 이런 소박한(?) 꿈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탐욕을 탐욕으로 이기려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강남 투기꾼을 따라 하다 가랑이가 찢어지는 우(愚)를 피하고,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뚫는 운(運)을 바라지 않고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싶다. 그게 대한민국 보통사람으로서 부동산 광풍에 대처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로 보인다. 집은 위치와 평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사는 게 더 중요하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