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불신’ 막으려… 블랙리스트 ‘추가조사를 추가조사’

입력 2018-01-24 19:08 수정 2018-01-24 21:59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다 기자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그는 오후 늦게 “국민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뉴시스

대법원장 ‘블랙리스트’ 대국민 사과·추가조사 발표 배경

“법원 문제는 법원에서 해결”
외부 개입 차단 ‘셀프 쇄신’
행정처 인적 쇄신·조직 개편 등
중장기 개혁 대책 언급

검찰은 관련 사건 재배당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 발표 이틀 만에 3차 조사 의지를 밝힌 건 이번 사태를 덮고 봉합하기보단 남은 의혹을 계속 규명하겠다는 뜻이다. 법원 내부 갈등까지 표면화되는 상황에서 정공법을 택하지 않으면 사법 신뢰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24일 대법관들과 긴급 간담회를 갖고 블랙리스트 사태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김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에 대한 추가조사’ 의사를 밝혔고, 대법관들 역시 이를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법원장은 입장문에서 “법원 스스로의 힘으로 이번 사안이 여기까지 밝혀졌듯이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검찰이나 정치권 등 외부 개입을 거부하고 이른바 셀프 쇄신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오후 6시 대법원 청사를 나서면서도 “법원의 문제는 원칙적으로 법관들이 법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게 나의 일관된 원칙”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원칙에 다른 의도는 없다”며 “법원 힘으로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사법행정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중장기 대책도 언급했다. 김 대법원장은 “행정처 인적 조직을 쇄신하고 조직 문화도 개편하겠다”며 “기존 행정처의 대외업무를 전면 재검토하고 근무하는 판사도 줄이겠다”고 했다. 또 조만간 출범 예정인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 등을 통해 국민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모든 부분을 사법 선진국 수준의 투명한 시스템으로 대폭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가 취임 전후 언급한 사법 개혁의 방향과 같은 선상에 있는 대책들이다.

법조계에선 김 대법원장이 추가조사위원회 발표 이후 벌어진 혼란 상황을 사법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오는 2월 법원 정기 인사를 앞두고 대대적인 인적 개편을 선언한 것 아니냐”고 했다. 행정처 축소 등 김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의 밑그림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빠르게 추진될 것이라는 의미다. 대법원 측은 “발표 내용과 형식은 모두 김 대법원장이 결정했다”고 했다.

검찰은 관련 사건을 재배당하고 사법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6월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전 행정처장,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기존 형사1부(부장검사 홍승욱)에서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성훈)로 옮겨 맡겼다.

공공형사수사부는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이 김 대법원장과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조사위 위원 등 7명을 고발한 사건도 담당하고 있다. 고발된 전·현직 대법원장과 고위법관 등을 수사부서 한 곳이 전담해 처리토록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본격적인 수사 착수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며 “향후 관련 사건의 진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수사 진행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황인호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