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 스스로 책임지지 않으면 외부에 휘둘린다

입력 2018-01-24 18:51
김명수 대법원장이 24일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큰 상처를 준 것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법원 추가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대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공식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그만큼 법원 내부의 동요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대법원장을 제외한 대법관 13명 전원이 재판에 외압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내용의 유감표명문을 발표하는 유례없는 일마저 벌어진 상황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에서는 연일 ‘사법 적폐 청산’ ‘법원 코드화’ 같은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며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절반으로 갈라놓은 이데올로기 싸움을 법원 마당에서 벌이는 것도 결코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사법부는 민주주의 사회가 존립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국가권력에 맞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종적으로 수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동시에 우리 사회의 가치관과 규범을 유지시키고 수많은 갈등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곳이다. 이를 위해 법관에게 개인의 자유와 재산, 심지어 생명을 박탈할 권한을 부여한다. 하지만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은 투표로 선출하지 않는다. 권한을 견제할 마땅한 장치도 없다. 그런데도 사법부가 유지되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는 모든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는 믿음이 있기에 사법부가 존재하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법원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 위기의 근원이었다면 지금은 전혀 다르다. 법원은 스스로 저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해야 한다. 법원행정처가 판사의 성향과 동향을 감시한 것 자체가 법관의 독립 원칙을 훼손한 행위다. 김 대법원장은 기존 두 차례 조사결과를 보완하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를 결정할 기구를 조속히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인적 쇄신과 법원행정처 조직 개편도 약속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잃어버린 국민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법원 스스로 책임자를 찾아 엄하게 처벌하지 않는다면 사법부가 외부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멈춰서도 안 된다. 법원행정처가 그렇게 한 이유를 엄하게 따져야 한다. 연구모임을 빙자해 특정한 정치 성향을 공유하고 재생산하는 법관은 국민 입장에서 결코 묵과할 수 없다.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법관이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한다는 믿음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고 사법개혁을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시에 법원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정치권을 비롯한 외부에서는 차분히 기다리며 지켜보는 게 옳다. 신뢰는 검찰이 수사에 나서 특정인을 망신 주는 방식으로 되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