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어둠’은 ‘얻음’ 이었다

입력 2018-01-25 00:00
이창훈 아나운서가 24일 서울 종로구 소속사 사무실에서 자신의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이씨(가운데)가 지난 15일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서울 강남역 근처를 달리는 모습. 이창훈 아나운서 제공
이창훈(32) 아나운서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건 지난 15일이었다. 서울 강남역 사거리를 200m 남짓 달린 이씨는 다음 주자에게 불꽃을 전달했다.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아나운서’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 이씨는 달린 거리는 짧았어도 어떤 주자보다 긴 여운을 남겼다.

“시각장애인은 빛을 잃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성화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잖아요. 빛을 잃은 사람이 환하게 타오르는 빛을 들고 달린다는 의미가 좋아 주자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씨는 그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성화 봉송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대학원 생활과 방송 이야기, 신앙생활 등으로 이어졌다.

“도로를 달릴 때 제 오른편 인도에 서 계셨던 시민들이 ‘파이팅’을 연호해 주셨는데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큰 힘을 얻었어요.” 이씨가 묘사하는 현장 분위기는 누구보다 섬세했다. 이씨는 대뜸 “최고의 기록은 언젠가는 바뀌지만 최초의 기록은 영원히 기억된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살아온, 또 살아갈 인생을 설명하는 듯했다.

그는 2011년 KBS 장애인 앵커 공채를 통해 뽑힌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아나운서다. 당시 경쟁률이 523대 1이었다. 그는 “단지 도전하고 싶어 공채시험을 봤다”고 말했다. 도전은 즉흥적이었지만 누구보다 철저하게 준비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은 건 노력의 결과였다. 2013년 KBS에서 나온 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그는 현재 KBS 3라디오와 KTV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야구를 좋아해 ‘주간 야구 왜?’라는 팟캐스트의 제작과 진행에 참여하고 있다. “야구는 기사를 통해 접합니다. 얼마나 흥미진진하다고요. LG트윈스 팬입니다. 저 나름 야구 전문가예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뇌수막염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부모님과 누나들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지금의 도전정신은 따지고 보면 신앙의 결실이다. 요즘도 장애를 딛고 꿈을 이뤄가는 인물로 여러 교회에 초청받아 간증을 한다.

이씨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는 성경 말씀을 좋아한다고 했다. “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살길 소망합니다. 부족한 게 많죠. 하지만 제게 능력 주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항상 기억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다큐멘터리에만 장애인을 등장시키는 미디어의 ‘장애인 프레임’이 불편하다고 했다. 이씨는 “‘어서와, 장애인은 처음이지’나 ‘장애인들의 나 혼자 산다’ 같은 방송도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다큐멘터리 말고 예능에 섭외해 달라”고 말하며 웃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