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최고의 헬라어 사전으로 꼽히는 ‘바우어 헬라어 사전’(생명의말씀사) 한글 완역본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독일어에서 한글로 번역 10년, 편집 2년의 시간을 거쳐 첫선을 보였다.
독일의 신학자 발터 바우어가 1928년 내놓은 ‘신약성경과 기타 원시 기독교 문헌의 헬라어 독일어 사전’에서 출발한다. 수차례 개정을 거듭해 왔고, 국내에선 영역본 제3판이 주로 사용됐다. 이 책은 1960년 바우어 사후 쿠르트 알란트, 바르바라 알란트, 빅토어 라이히만 등의 학자가 20년 넘게 개정 작업을 진행해 88년 출간한 독일어 제6판을 번역한 것이다. 바우어와 학자 3명의 이니셜을 따서 ‘BAAR판’으로도 불린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재독 번역가 이정의(78)의 역할이 컸다. 1964년 독일 광부로 파견된 그는 93년 광산업체에서 퇴직한 뒤 보훔의 루어대 신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23일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천문학 공부를 하려다 딸이 배우던 신학이 흥미로워 보여 신학과에 진학했다”며 “독일 신학생은 의무적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배워야 했는데 현지 유학 중인 젊은 목사들이 한국에는 학문적으로 쓸 만한 히브리어 사전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했다. 고전어 시험을 끝내자마자 ‘게제니우스 히브리어 아람어 사전’ 번역에 착수했다. 심장 수술 등의 고비를 넘긴 끝에 10년 만에 번역을 끝내고 2007년 국내에서 출간했다.
이듬해 시작한 헬라어 사전 번역은 더 쉽지 않았다. 그는 “번역 초기 암 진단을 받고 매우 어려웠다”며 “책을 번역할 수 없다는 생각보다 삶 자체가 의미를 잃게 된다는 허무함이 엄습했다”고 했다. 하지만 수술 이후 오히려 상황이 달라졌다. 그는 “수술 후 거동하기 어렵고 음식 섭취 등이 자유롭지 못해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고,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술 후 3년간 전체 10년 동안 중 가장 많은 분량을 번역하게 됐다”며 “하나님의 섭리는 제가 알지 못하는 동안 저와 함께 있었다”고 고백했다.
이 사전의 최대 장점은 하나의 의미만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용례를 섬세하게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장점을 보여주는 단어를 묻자 ‘로고스(말씀)’와 ‘엘피스(희망)’, ‘프뉴마(성령)’ 세 단어를 꼽았다. 그는 “가령 로고스란 단어는 여러 모양으로 표현되는 말로서 질문, 설교, 예언, 명령, 소문, 소식, 이야기, 표현, 연설뿐만 아니라 학문, 담화, 말의 대상, 사물, 사건, 책, 글, 하나님의 계시, 명령,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 헤아림, 숙고, 계산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격화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이됐다”며 “하나하나 개념마다 예문과 설명을 들어 섬세하게 풀이한 것이 남다른 사전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신약 본문뿐 아니라 각종 고전, 초대교회 및 교부시대 문헌, 외경에서의 용례까지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최대한 잘못 해석될 여지를 줄여준다. 그는 “한국어 성경은 그 자체로 잘 번역됐지만, 성경 연구자나 목회자가 성경 말씀을 풀이할 땐 본문의 맥락과 단어의 근원을 제대로 살펴볼 때 듣는 사람에게 정확히 뜻을 전달할 수 있다”며 이 사전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671쪽, 9만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신학자나 설교자로서는 소장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일러스트=이영은 기자
암 극복하며 10년 걸려 번역 “하나님 섭리와 함께 있었다”
입력 2018-01-25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