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안팎 종일 어수선
“재판 어떻게 볼지 걱정”
추가조사위는 공식 해산
민변 “진상 명백히 밝혀야”
23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 관용차에서 내린 김명수(사진) 대법원장이 영하 10도 이하의 맹추위를 견디며 청사로 걸어갔다. 기자들이 다가가 전날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묻자 김 대법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일이 엄중하다는 것은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자료를 잘 살펴보고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은 뒤 신중하게 입장을 정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대법원장은 점심을 구내식당에서 먹었다. 일과시간 내내 조사결과를 두고 고심했다고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빨라도 이번 주 후반에야 입장을 밝히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법원 추가조사위원회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결과가 나온 다음 날 법원 안팎은 어수선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면서도 자꾸 문건 내용을 떠올리게 된다”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 관련 문건에 ‘1심과 달리 결과 예측이 어려우며’라는 표현이 있는데 1심 재판부의 의중을 행정처가 파악했었다는 건가”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문건에 ‘이미 제기된 제18대 대선 무효 확인 소송에 (원 전 원장 재판 결과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도 있다”며 “대법원이 이런 정무적 판단을 하는 걸 사건 당사자들이 안다면 법원과 내 재판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고 했다.
추가조사위는 공식 해산했지만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 추가조사위는 행정처 컴퓨터에서 암호가 설정된 파일 760여개는 열어보지 못했다. 특히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컴퓨터는 아예 살펴보지도 못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법원이 더 이상 사태를 봉합하거나 은폐하려 하지 말고 추가조사를 통해 진상을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세 번째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법관들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에 회부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임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은 지난해 6월 윤리위 회부를 전후해 법원을 떠난 상태다.
검찰 수사까지 거론된다. 서울의 한 법관은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의견이 나올 순 있지만 이는 사법부 독립과 충돌될 여지가 있다”며 “조사를 여기서 끝내고 재발 방지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 고발장을 접수한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혐의를) 검토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대법원장 “사법부 블랙리스트, 엄중한 사안… 추후 입장 발표”
입력 2018-01-23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