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586억이 임원계좌로… ‘요지경’ 가상화폐 거래소

입력 2018-01-23 19:24 수정 2018-01-23 22:23

당국, 자금세탁 사례도 적발
마약대금 등 의심 수사 의뢰
30일부터 실명거래 의무화
1일 1천만원 입출금 땐 보고


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A사는 투자자들로부터 586억원을 모았다. 투자금은 자사 명의 4개 법인 계좌로 입금된 후 A사 이사의 개인 계좌로 보내졌다. 은행들은 A사의 불투명한 자금 운영 실태를 충분히 모니터링하지 못했다.

가상화폐 거래가 자금세탁 등에 쓰였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례도 금융 당국에 적발됐다. 거래소 계좌에서 단기간에 수십억원이 특정 개인 혹은 법인 계좌로 송금된 후 현금 인출된 사례 등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조세포탈 등의 혐의가 짙다고 보고 최근 검찰 등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마약대금 등 불법자금이 반입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금융위는 23일 이런 내용의 은행권 가상화폐 현장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은행 등에 거래소에 대한 철저한 감시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의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도 공개했다. 오는 30일 시행되는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은행들은 의심스러운 가상화폐 거래를 FIU에 보고해야 한다. 이용자가 하루에 1000만원 이상 거래소와 입금 혹은 출금 거래를 하면 의심거래로 보고해야 한다. 거래소가 자사 법인 계좌로 투자금을 모아 불투명하게 운영할 경우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다.

A사처럼 고객 자산을 법인 계좌로 모아 관리한 가상화폐 거래소만 60곳이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쇼핑몰’로만 등록하고 가상화폐 거래 업무를 한 곳도 있었다. 은행에서 가상계좌를 발급받은 뒤 다른 거래소에 재판매한 사례도 발견됐다. 대부분 중소형 거래소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A사의 경우 고객 투자금만 500억원이 넘는다.

현재는 가상화폐 거래소를 규제할 법이 없기 때문에 이런 자금 운용이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위는 이런 거래에 사기, 횡령, 유사수신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자금이 섞이면서 투자자들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밖에 특정 개인이 다수의 일반인들로부터 모은 자금을 거래소로 보낸 사례도 적발됐다. 금융 당국은 사기, 유사수신 사건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오는 30일부터 은행권에선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도 시작된다. 하지만 자금세탁 방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은행들은 높은 수준의 감시 의무를 지게 됐다. 신규 투자자의 진입이 자유롭게 허용될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