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촌’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동두천시 턱거리 마을. 중·고등학생 20여명이 독거노인이 살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손에는 정성껏 만든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지난 18일 동두천나눔의집(원장 김현호 대한성공회 신부)에서 진행된 ‘청소년 나눔고리 피정’ 현장을 들여다봤다. 이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독거노인 등을 찾아 직접 만든 음식과 연탄 등을 전하며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내가 스물네 살 땐 미군들 하고 텐트밖에 없었지… 쌀 구하러 이곳에 찾아왔지.”
미군부대 캠프 호비 옆 빌라에 사는 심계수(85) 할머니가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자신을 찾아온 학생들을 향해 옛 기억을 끄집어냈다. 황해도 풍산군이 고향인 그는 6·25전쟁 때 월남했다. ‘동두천에 가면 먹을 게 많다’는 소문에 이곳을 찾아 미제 물건을 팔며 생활했던 얘기, 서울에서 개성까지 기차로 2시간이면 오갔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김류민(15)군은 “아침에 일어나 친구들이랑 만들었다”며 콩나물무침과 카레, 부침개를 심 할머니에게 건넸다.
학생들은 한참을 걸어 한모(75) 할머니를 찾아갔다. 전날 학생들이 전해 준 연탄이 거실 한가운데 놓여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왜 거실에 연탄을 뒀느냐”는 질문에 한 할머니는 “밖에 두면 옮기기 힘들잖아”라고 답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내놓자 한 할머니는 쟁반에 귤을 담아왔다. 살아온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학생들에게 한 할머니는 상자에서 옛날 사진들을 꺼내 보여줬다. 학생들은 미군부대 앞에서 술장사를 했다는 한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에 “와, 미인이시네요”라며 감탄했다. 한 할머니는 “젊을 때 화장해서 안 예쁜 사람이 어디 있냐”며 손사래를 쳤다.
대한성공회 내 ‘북한통’으로 알려진 김현호 신부는 대북지원단체 평화를일구는사람들(TOPIK·토픽)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그는 2014년부터 이곳 나눔의집을 섬기면서 주일에는 성찬례를 집전하고 있다. 휴전선 인근에서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사는 이들을 돌보는 차원에서다.
2004년 시작돼 올해 20회째를 맞은 피정 프로그램도 상처 치유의 일환이다. 지난 17일부터 2박3일 동안 피정에 참여한 김군은 “할머니들이 많이 외로워하실 것 같아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눔의집은 지역 어르신과 청소년에게 항상 열려 있는 곳이다. 이들에게 한글과 음악 등을 가르치고 음식을 대접하며 국악 콘서트 등 공연도 개최한다. 김 신부는 마을 소식지인 ‘터기리 마을신문’을 발행해 동두천과 관련된 어르신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향후 청소년으로 국한된 피정 프로그램도 청장년층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 신부는 “분열의 흔적이 녹아있는 이 마을을 회복시키는 게 평화 운동이자 곧 통일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동두천=글·사진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할머니들 외로워하실 것 같아 발걸음 안 떨어져요”
입력 2018-01-24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