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들 새 조직에 융화시키는 게 ‘성공 열쇠’

입력 2018-01-23 18:51 수정 2018-01-23 22:45
대공수사권 이관… 문제점은

보안수사대·대공수사 인력 동거
경찰 조직 확대 불가피
국정원 정보망·노하우 흡수
안보공백 최소화할 수 있어

정보·수사 분리 새로운 시도
빠른 시일 내에 안착시켜야
전문가 “국정원이 만든 정보망
온전히 확보 못하면 수사 차질”

간첩을 잡는 일은 지금도 경찰의 임무 중 하나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워낙 막강해 상대적으로 빛이 나지 않았을 뿐이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편안은 아예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모두 경찰로 옮기겠다는 내용이다. 국정원 수사관들이 경찰청 안보수사처(가칭) 소속으로 옮겨오는 셈이다. 국정원 힘 빼기의 일환이다. 경찰은 국정원보다 간첩은 더 잘 잡아내고 인권은 더 잘 지켜내야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경찰 조직 확대는 불가피하다. 안보수사처에는 현재 경찰의 43개 보안수사대와 국정원 대공수사 인력이 동거하게 된다. 청와대 개편안은 미국의 중앙정보부(CIA)가 정보수집을, 연방경찰(FBI)이 수사를 담당하는 것과 같은 역할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두 조직의 융합이다. 경찰로서는 지휘체계도 계급체계도 자신들과 상이한 국정원 직원들을 새 조직에 융화시켜야만 대공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 교수는 23일 “직급 문제에 별도의 인력과 예산을 투여해야 한다”며 “경찰에도 국과수 검시관 등 일반직이 있는 것처럼 국정원 대공수사 인력에게 5급 이상의 고위직 자리를 마련해 주면 두 조직을 과도적으로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 교수는 또 “당분간은 지휘체계 역시 경찰과 국정원이 별개로 가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 과정에서 조직 이기주의나 시행착오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경찰은 수사권 행사를 위한 정보망 구축이 필요하다며 조직 확대를 요구하고 있고, 국정원이나 전문가들도 정보수집 기능과 수사 기능의 분리라는 새로운 시도에 낯설어하고 있다.

경찰은 국내 정보를 수집하며 국정원과 경쟁·협력 관계를 유지했다. 성과도 있다. 최근 5년 동안 경찰이 검거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은 493명 중 12명이 간첩이었다. 지난 10년간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 749명 중 531명(71%)은 경찰이, 187명(25%)은 국정원이 수사했다.

그럼에도 국내외 첩보를 종합·분석해 정보를 만드는 일에는 여전히 국정원의 역할이 크다. 노무현정부 당시 국정원 1차장을 지낸 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는 “국내에서 발생한 (국보법 위반) 사건은 경찰이 처리할 수 있어도 해외에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긴다고 해서 반세기 넘게 구축한 정보망과 노하우까지 온전히 전달할 수는 없다. 대공 수사 업무의 핵심인 북한 관련 정보는 대부분 국정원의 블랙요원(비공개 정보원)과 그들이 구축한 휴민트(인적 정보)를 통해 들어온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이 외국 정보기관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정보를 수집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결국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이 성공하려면 정보와 수사의 분리라는 새로운 시도를 빠른 시일 내에 안착시켜야 한다. 미국은 CIA가 해외정보 수집을, FBI가 국내 수사를 전담하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국정원의 정보망은 한두 달 걸려 만든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낸 망”이라며 “경찰이 이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대공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손재호 이형민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