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진석] 라오쯔하오를 아시나요

입력 2018-01-23 17:24

라오쯔하오(老字). 명청 시대에 창업해 대대로 내려오는 중국의 전통적인 기업 또는 점포를 의미한다. 요즘 용어로 풀이하면 ‘백년 기업(가업)’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중국 정부가 일정 지역 내에서 오랜 세월 신용을 쌓고 명망을 얻은 점포 중에서 공식적으로 선정하는데 가장 오래된 라오쯔하오는 허녠탕(鶴年堂)이라는 약방으로 1400년대 초에 설립돼 역사가 600년이 넘는다. 중국 전통문화와 관련된 수공예품, 식품, 약품, 의류, 차와 관련된 점포가 많으며 대부분 150년 이상 운영되고 있다.

라오쯔하오는 유가사상에 바탕을 둔 직계가족 경영승계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혈연보다는 뛰어난 경영능력을 중시해 능력이 있으면 가족이 아니더라도 상속하는 일본의 전통 점포인 시니세(老)와 차별된다.

라오쯔하오는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 1949년 이전에는 1만6000개 정도로 번성했으나 중국 정부가 구시대의 잔재라며 폐쇄시킨 적도 있으며,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는 고객의 니즈 변화, 현대적 기업시스템 도입 등 환경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도태되기도 했다. 2015년 중국 상무부가 인정한 라오쯔하오는 1600여개로 공산화 이전에 비해 90%가 감소했다.

그러나 일부 라오쯔하오는 현대적인 경영방식을 도입하면서 대기업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주식회사로 변신하거나 그룹화를 통해 영세성을 극복하고 원가경쟁력을 확보했다. 또한 수백년 전통의 브랜드에 서구식 경영시스템의 장점을 결합시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것도 있는데 현재 중국을 대표하는 주류업체인 마오타이, 우량예 등도 라오쯔하오로 출발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예이다.

라오쯔하오의 역할과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라오쯔하오는 중국을 대표하는 명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중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즉 중국의 민족성, 전통, 지역 특색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자산으로 중국 방문객들은 꼭 방문해야 하는 명소로 부각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 라오쯔하오가 밀집한 거리인 쉬수이제에는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했다. 지방의 특색에 따라 발전한 라오쯔하오는 관광산업 등 지방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기도 한다. 또한 라오쯔하오의 상도의는 중국의 기업들에게 일종의 정신적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라오쯔하오의 전통적 상도의인 ‘어린이와 노인은 속이지 않는다’ ‘두 가지 값을 부르지 않는다’ 등은 현대 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업윤리다.

이에 따라 중국 상무부는 10년 전부터 라오쯔하오의 승계, 전통기예의 발전, 경영혁신 등을 지원하는 ‘라오쯔하오 진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중국의 전통상표가 해외에서 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23개 라오쯔하오를 국제상표로 등록했다. 주요 라오쯔하오 사례를 보면 오리구이 전문 체인점인 취안쥐더(全聚德)는 1864년 오리구이 식당으로 출발해 150년간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 최고의 식당체인으로 성장했다. 1950년 이후 정부의 주요 만찬행사를 도맡아 하고 있으며 1993년에 현대식 경영을 도입하며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현재 직영 및 가맹점 100여개, 종업원 5000여명, 매출 약 3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식 차 전문업체인 우위타이(吳裕泰)는 1887년 베이징의 작은 전통 차 매장으로 시작해 130년간 중국식 차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250여개의 점포와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의 100년 기업과 가업은 수만 개가 넘는다. 100년은 기본이고 200년, 300년 된 기업도 즐비하다. 그러면 한국의 100년 기업은 어떠한가. 두산, 동화약품 등 10개가 안 되는 실정이다. 한국의 기업가나 상인들의 장인정신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정부 정책 등 외부 환경 때문인가.

유진석 동북아미래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