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집인데… ‘여관 달방’ 불 나면 속수무책

입력 2018-01-23 05:05
“월세방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여관 입구에 붙어 있다. 이틀 전 방화로 10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장여관 인근 좁은 골목에 위치한 곳이다. 곽경근 선임기자

화재 관리 사각지대 방치

저소득 장기 투숙자들
휴대용 가스버너로 취사
여관들, 대놓고 ‘취식가능’ 홍보
6명 참변 여관 면적 103㎡ 불과
스프링클러 등 설치 의무 없어


6명의 사망자와 4명의 부상자를 낸 서울 종로구 방화 사건은 저소득층이 ‘달방’으로 이용하는 여관에서 벌어졌다. 달방은 한달치 숙박료를 내고 묵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달방을 이용하는 이들은 휴대용 가스버너 같은 취사도구를 가져다 놓는 등 사실상 주거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안전 대책은 미비하다.

지난 20일 방화 사건이 발생한 서울장여관은 월 45만원에 달방을 빌려주고 있었다. 이들은 여관방에서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지어 먹었다. 인근에서 여관업을 하는 A씨는 “사고 당시 서울장여관에는 달방에서 먹고 자고 하는 장기 투숙자가 3명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휴대용 가스버너는 그대로 흉기로 변한다. 일반 숙박업소로 분류돼 독립된 주방이 없는 여관에서 방 안에 방치된 연소장치가 폭발하면 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화재 당시 현장을 목격한 A씨도 “프로판 가스가 있었는지 뻥뻥 소리가 났다”고 증언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목조 건물에서 조리를 한다면 당연히 화재 위험이 높아진다”며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는 콘도 등의 숙박시설이나 가정집과 비교하지 말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법을 소급적용해 단독 경보형 감지기, 완강기 등 안전시설을 갖추거나 최소한 목재 건물에 방염처리라도 하도록 조례를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장여관은 지어진 지 50년이 넘었고 면적이 103㎡에 불과해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자체가 없었다. 소방 점검에서도 우선순위가 밀렸다. 소방 관계자는 “서울장여관을 가장 최근에 점검한 게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최근 3∼5년 사이의 기록에는 없다”며 “10%를 선정해서 안전 점검을 하는데 투숙객이 많은 업소 위주로 점검한다”고 말했다.

종로구 일대에는 서울장여관 말고도 달방으로 객실을 빌려주는 오래된 여관이 많다. 아예 ‘김치 드립니다’라고 붙여놓고 취식이 가능하다고 알리는 곳도 있다. 모두 불법이다. 종로구 관계자는 “종로구 내에 정식으로 주방을 설치해 조리할 수 있는 생활형숙박시설은 7곳 뿐”이라고 말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2일 오전 “방화사건 사망자 6명이 전부 화재로 사망했다”는 1차 부검 소견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20일 사망자 5명은 전원 객실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역시 객실 내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된 김모(54)씨도 21일 숨졌다.

글=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