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한국 정치를 바라보는 두 가지 잣대

입력 2018-01-23 00:01

한국 정치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인 적이 없었다. 4대강 사업부터 국정농단에 이르기까지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진 일련의 정치적 사건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으로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북한을 초대하는 서한을 보냈던 국회의원이 지금은 정반대의 편지를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보냈다. 우파라서? 보수라서?

국가정보원 돈을 가져다 썼던 당시 대통령을 향해 직원이 그랬단다. 치사하다고. 부하 직원과 국가의 공조직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돈을 버젓이 임의로 가져다 쓰는 것은 그가 좌파든 우파든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최순실 국정농단은 무능과 유능함의 문제이지, 보수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 한국 정치는 그냥 상식과 양식, 도덕과 양심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 기독교인으로서 정치를 어떻게 보고 참여할 것인가. 청년 교우가 내게 물었다. “뭐가 옳고 그른지 너무 혼란스러워요. 4대강과 세월호, 국정농단과 탄핵 등을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

두 가지 잣대만 있으면 최소한의 판단을 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fact)이다. 참과 거짓을 따져보면 된다. 로고스서원의 청소년인문학교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이 뭐지?” 중 1 남자아이가 그런다.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요.” 뭣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데도 어떤 기독교인은 듣기 싫다, 그만하라며 윽박질렀다.

최근 기독교세계관 학술동역회가 발행하는 월간회보 ‘월드뷰’는 “적폐청산 어떻게 볼 것인가? 개혁인가? 보복인가?”라는 특집을 구성했다. 제목 자체가 특정한 정치 입장을 전제한 데다 탄핵은 기획이고, 최순실의 태블릿PC는 조작이라는 글이 실렸다. 팩트가 안 맞다. 확증 편향에 빠져 뻔히 보이는 것을 안 본 척하는 것인지, 아예 안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적어도 보복이라고 말하려면 혐의가 충분히 소명된 이후에 판단할 일이다.

또 하나의 기준은 ‘고통’이다. 정치인들의 행동과 말은 ‘누가 가장 이득을 챙기는가’로 보라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가장 아프고 힘든 약자인지, 누가 가장 피해를 보고 있는 소수인지를 읽어야 한다. 십자가에 관한 진실은,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를 죽인 강자와 부자가 아니라 예수처럼 약자와 빈자의 자리에 설 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지난주 ‘십자가의 사회학’이라는 칼럼을 읽었다. 이우윤 새누리교회 목사는 글에서 사회가 위기를 해소하고 안정과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특정한 소수자와 약자를 희생시킨다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에 근거해 이렇게 말한다. “적폐 세력의 청산이라는 명분이 또 다른 희생양을 찾는 악습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십자가의 사회학은 희생양을 찾는 권력자들의 음모가 이제 더 이상 성공하지 못함을 경고하는 하늘의 메시지이다.”

사실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잣대를 들이대 보자. 희생양이 되기 위해 무죄하고 무고해야 한다. 적폐 세력이 무죄하고 무고한가. 사실관계가 전도됐다. 적폐로 누가 가장 고통 받았는가. 최고 권력자인가. 일반 국민인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의 제자가 십자가에 못 박는 자를 편드는 해괴한 일이 뒤틀린 기독교의 맨얼굴인가 싶어 씁쓸하다. 죄 지은 자를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기보다 그가 자기와 같은 지역 출신이라고, 정치적 노선이 같다고 해서 죄 지은 자를 희생양이라고 말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근본적 일탈이다.

데이비드 흄이 ‘오성에 관하여’에서 쓴 글을 패러디해 말하자면, 우리는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적 쟁점이나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을 때 물어보라. 그가 실제 있었던 사실을 말하는가. 그는 고통 받는 자의 시선으로 말하는가. 아니라면, 그것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말이다. 그 말엔 궤변과 환상 말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과 고통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정치적 주장이 기독교인과 교회 안에서 더 이상 활개 치지 말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들린다.

김기현(로고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