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대출 물길, 가계서 기업으로 돌린다

입력 2018-01-22 05:00

정부, 자본규제 전면 개편

LTV 60% 초과 대출 은행
BIS 비율 위험가중치
2년간 70%까지 올려 불이익
예대율 규제 강화도
기업 대출 많으면 인센티브
가계 빚 40조 억제 효과

정부가 금융권이 내주는 가계대출을 기업대출로 돌리기 위한 ‘물길 바꾸기’에 나선다. 부동산에 쏠린 대출을 창업·벤처 등 생산적 부문으로 돌리기 위해 금융권 자본규제를 전면 개편한다. 가계대출이 많은 은행은 건전성 지표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은 21일 이런 내용의 생산적 금융을 위한 금융권 자본규제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금융 당국은 이번 규제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 가계대출 증가액이 약 40조원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요 규제는 올해 1분기 중 금융위 감독규정 개정 등을 통해 시행된다.

이번 발표의 골자는 은행 등이 가계대출할 때 기업대출에 비해 더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기업대출에 대한 부담은 완화해준다. 자연스럽게 대출이 기업으로 흘러가게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60%를 초과하는 대출은 고위험 대출로 분류하고,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 때 위험가중치를 현행 35%에서 2년간 70%까지 단계적으로 높인다. 이렇게 되면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이 많은 은행은 건전성 지표가 나빠지면서 추가 자본을 쌓아야 하는 부담을 안는다. 은행으로서는 추가 비용 부담이 수익성 악화 요인으로 작용해 고위험 주택담보대출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된다.

예대율 규제 강화도 핵심이다. 예대율은 예금 잔액에 대한 대출금 잔액의 비율이다. 이 예대율을 산정할 때 가계대출 가중치는 15% 올리고, 기업대출에는 15% 내린다. 금융위는 은행의 예대율이 100%를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새 규제가 시행되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시중은행의 평균 예대율은 98.1%에서 99.6%로 상승한다. 사실상 추가 대출을 내줄 여력도 부족해지는 것이다. 또 부문별 경기대응 완충자본도 내년부터 도입된다. 가계대출이 과도하게 팽창할 때 금융위가 결정한 적립비율만큼 은행이 추가 자본을 쌓는 제도다. 지키지 않으면 상여금 지급 등이 제한된다.

반대로 기업대출에 대한 인센티브는 강화된다. 금융 당국의 은행 경영실태 평가 기준에 중소기업 신용대출 지원실적 항목을 신설한다. 중소기업특화 증권사가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할 경우 주식 보유에 따른 추가 위험액 가산을 면제받게 된다.

금융 당국은 고위험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로 최대 36조원, 예대율 규제 강화로 최대 11조원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3∼5년간 중장기적으로 40조원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수도권의 집값 급등을 잡지 못할 경우 대출 공급을 옥죄는 차원의 규제로는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