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불만 표출? 北 ‘멋대로 일정’ 미스터리

입력 2018-01-22 05:03
국제사회의 비핵화 논의
정부 제재 준수에 불만인 듯
南 일부 언론 “쓰레기” 비난

‘선심 쓰듯 방문단 파견
南 고마워하는 프레임’ 우려


북한은 당초 예고했던 20일이 아닌 하루 뒤인 21일 예술단 사전점검단을 파견했다. 북한은 당초 합의됐던 방남 일정을 일방적으로 ‘파견 중지’ 통보했다가 그 다음날 다시 파견을 통보했다. 북한의 일방적인 일정 변경 배경을 두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논의, 남측에 대한 불만 등 여러 해석이 나왔다.

북한은 지난 19일 오전 10시 ‘사전점검단을 20일 파견하겠다’고 남측에 통보했다. 하지만 밤 10시 남측에 ‘파견을 중지한다’고 기습적으로 통보했다. 남측은 20일 오전 11시20분쯤 파견 중지 사유에 대한 설명을 북측에 요청했지만 북측의 답변은 없었다. 다만 당일 오후 6시40분쯤 ‘사전점검단을 21일 파견하겠다’고 다시 통보해 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이 방남을 일방적으로 중지한 이유를 통지문에서 설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사전점검단 방남 일정을 조정한 이유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논의 과정의 불만을 드러냈다는 시각이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자 논설에서 최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개국 외교장관회의에 대해 “남조선 당국이 동족을 해치기 위한 국제적 음모에 가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내용을 거론하며 “(남북 대화는)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는 고약한 나발을 불어댔다”고도 했다. 노동신문은 또 논평에서 ‘쓰레기 언론’이라며 남측의 일부 언론을 실명으로 맹비난했다. 신문은 “우리가 취하고 있는 대범한 조치와 성의 있는 노력에 대해 ‘체제 선전을 위한 것’ ‘위장 평화공세’라고 악담질을 해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공동훈련이 예정된 마식령스키장이 북한의 체제 선전장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남측 언론 보도를 문제삼은 것이다. 일각에선 사전점검단을 이끌고 남측을 방문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옛 애인이라는 설이 부각된 데 불만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을 준수하며 북한 대표단에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문제삼았을 수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은 자기들이 나름 성의를 보이고 있는데 우리 정부가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고 보고 섭섭함을 표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북한의 일방적인 통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끌려 다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한이 ‘선심 쓰듯’ 대규모 방문단을 파견하고, 우리가 이를 고마워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북한은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인공기를 태우는 남측 보수단체의 집회 등을 문제 삼아 대회 불참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시간을 끌다 대회에 참가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에는 대규모 응원단 파견 입장을 밝혔지만 체류비 지원 문제 등을 놓고 남측과 입장차를 보이다 불참했다.

글=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