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DNA 되살리자] 퇴직→ 사업→ 파산→ 굴 양식… “도전 없으면 얻을 것 없다”

입력 2018-01-22 05:02
이민기 해금수산 대표가 지난 18일 경남 고성군 하일면에 위치한 양식장에서 자체 개발한 원통형 채롱망과 직접 기른 개체굴(아래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층을 내 굴이 서로 붙지 않고 자랄 수 있게 고안된 채롱망에서 따로 자란 개체굴은 덩굴처럼 길러내는 수하식 양식 굴에 비해 크기가 크고 모양도 예뻐 높은 가격에 팔린다. 고성(경남)=김지훈 기자
해양수산부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하일중학교 동문들이 제작한 현수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 대표. 고성(경남)=김지훈 기자
⑤ ‘개체굴’ 양식 선두주자 이민기 해금수산 대표

직장 그만두고 사업하다 실패
2010년 고향으로 되돌아와
고부가가치 양식에 뛰어들어

모양도 예쁘고 크기도 2배 커
외국 바이어들 “최상급” 극찬
시장서 10배 더 비싸게 팔려

시행착오 끝에 특허만 10개
작년 ‘해양수산 신지식인’ 뽑혀


이민기(55) 해금수산 대표는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최근 각광받는 ‘개체굴(낱개굴)’ 양식의 선두주자다. 굴을 하나씩 따로 길러내는 양식 방법이다. 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수십개를 덩굴처럼 길러내는 ‘수하식 양식’과 구별된다. 개체별로 따로 성장한 굴은 기존 굴에 비해 모양이 예쁠 뿐만 아니라 크기도 1.5∼2배 크다. 시장에서는 10배 비싼 가격에 팔린다. 지난해 시범사업에서 성공한 이 대표는 올해 개체굴로만 2억원 이상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빚만 진 채 귀향, 늦깎이 귀어

해금수산 양식장은 경남 고성군 하일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이 대표의 고향이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랐지만 이 대표의 이력은 어업과는 거리가 멀다. 마산 경남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지난 18일 하일면 양식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옛날 부모들은 자식들이 큰 도시에 가서 대학 다니고 좋은 직장 얻는 걸 가장 큰 도전이자 성공으로 생각했다. 집안 막내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그만둔 뒤 사업을 시작했던 이 대표는 2007년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패스트푸드점의 간판을 달아주는 업체를 운영했는데, 일의 대가로 받았던 어음이 부도가 났다. 살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고 업체는 파산했다. 7억원의 빚 중 7000만원은 갚지도 못한 채 이 대표 부부는 2010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래도 고향에는 누울 자리라도 있지 않겠나 싶었다. 빈털터리라 달리 갈 곳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밤낮으로 수익 고민, 반복된 실험

어쩔 수 없이 귀어를 하게 된 이 대표는 2∼3년 정도 다른 양식장 일을 도왔다. 인생 대부분을 도시생활을 했으니 일단 일을 배우는 게 우선이었다. 이 대표가 자신만의 양식장을 갖고 본격적으로 양식업을 하게 된 건 2013년부터다. 이 대표는 가리비와 굴 양식을 함께 시작했다. 5개월이면 다 자라는 가리비에 비해 1년 내내 길러야 하는 굴 양식은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태풍이 오거나 수확시기를 놓쳐 버리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었다.

이 대표가 굴 양식 관련 각종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조금만 시야를 넓혀 봤더니 개체굴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보였다. 한국 사람들은 깐 굴을 주로 소비하니까 굴 껍데기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럽뿐만 아니라 이웃인 중국만 봐도 굴의 가치는 껍데기가 얼마나 크고 예쁜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프랑스가 십수년 전부터 개체굴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데, 주변에 그 누구도 거기 뛰어들 생각을 안하더라”고 덧붙였다.

다들 기존 양식법에 만족하고 있을 때 이 대표의 도전은 시작됐다. 개체굴 양식을 위한 채롱망을 개발했다. 원통형 모양의 그물 안에 아파트처럼 층이 있고, 각 층에서 굴이 따로 자랄 수 있게 했다. 굴마다 자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돼 다닥다닥 붙어 자라는 수하식 굴보다 크고 모양도 예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굴이 성장하는 동안 여러 차례 굴을 꺼내 부산물을 털어내고, 굴 가장자리 모양을 다듬는 작업이 필요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이 작업을 위한 ‘채롱회전기’를 개발했다. 채롱망과 채롱회전기를 비롯해 그가 새로운 양식법에 도전하면서 낸 특허만 10개다.

필요한 장비를 마련하는 데 초기비용이 들었지만 개체굴 수익성이 좋아 비용회수에 걸리는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반 수하식 양식 굴이 10㎏당 8000∼1만원에 팔릴 때 개체굴은 7만∼8만원에 팔린다. 10배 가까이 가격차가 난다.

해외 바이어 “‘K’마크 달아도 될 최상급 굴”

소식을 먼저 들은 이들은 해외 바이어들이었다. 지난해 4∼5월 홍콩과 마카오, 중국, 일본의 굴 수입업자들이 해금수산의 굴을 보러 이 대표의 양식장을 직접 찾았다. 업자들은 이 대표가 기른 개체굴을 보고서는 “프랑스가 생산하는 최상급의 굴 못지않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업자는 “프랑스 최상급 굴에는 껍데기에 ‘G’마크를 새기는데, 이 대표의 개체굴에도 ‘K’마크를 달아 시장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바이어는 이 대표가 시범삼아 기른 개체굴 1t을 수입해 갔다. 지난해부터 양식 중인 개체굴 70t 역시 알이 들어차면 중국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이 대표는 개체굴로 올해만 최소 2억3000만원 이상 순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 중국의 개체굴 수요를 보면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며 “기존 굴 양식업자나 귀어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계적인 시장을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이 대표를 ‘해양수산 신지식인’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도전 쉽지 않지만 안주하면 안 돼”

이 대표는 지금의 성공에 안주할 생각이 없다. 직접 개발한 개체굴 양식법을 다른 조개류에도 적용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개체굴을 길러낸 것처럼 고동도 그렇게 기를 수 있을지 시도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 1년 내내 길러 겨울에야 수확하는 지금의 양식방법을 1년 내내 수확이 가능하도록 할 양식법은 없는지도 고민하고 있다.

그는 “말이 쉽지 새로운 길에 도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며 “그렇다고 안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의 아내 조경희(55)씨는 “수익이 나면 그 돈 가지고 또 장비 개발하는 데 쓰고 그런다. 말려도 소용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전하지 않고 안주하는 사회 분위기에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 대표는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너무 수동적으로 사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그가 이런 지적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대표는 개체굴 양식법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멘토 역할을 하겠노라고 정부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누누이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이 신기술을 배우겠다고 이 대표를 찾아온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부의 지원 역시 아쉽다고 했다. 단순히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만으로는 도전을 장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 힘들 것이란 지적이다. 그는 “귀어정책만 봐도 그렇다. 비용지원 정책은 쏟아지지만 사람들이 귀어라는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이유는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다. 배타적인 어촌계와 귀어민들 간의 관계설정과 어업은 고된 일이라는 인식 등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더 많다”고 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안전망과 문화가 확충돼야 정부의 각종 지원책들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고성(경남)=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