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 초동수사권·인력 확보 과제
제주자치경찰단 내부서도 회의적
“한계 극복 못하면 무용지물” 의견
“일반 범죄 수사권 주지 않으면
비효율적인 조직 하나 더 느는 꼴
靑 발표에는 인력·예산 내용 빠져”
美 대부분 수사 자치경찰이 맡고
강력·광역사건만 FBI로 넘겨
“수사권이 없는데 순찰차 타고 제복 입는다고 해서 경찰인가요. 이런 자치경찰은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게 낫습니다.”
제주자치경찰단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편안을 두고 19일 이렇게 말했다. 개편안은 제주도의 자치경찰제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지만 정작 제주자치경찰단 내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제주도 실험에서 보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면 자치경찰제는 무용지물이 될 거란 의견이 대부분이다.
청와대는 지난 14일 수사권 조정이 포함된 권력기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공룡경찰’에 대한 우려를 자치경찰제 도입을 통해 불식시키겠다고 밝혔다. 현재 중앙정부 소속인 경찰을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소속으로 이원화해 경찰 조직을 분리·분산하겠다는 취지다.
청와대가 구상하는 자치경찰제는 각 시·도지사 소속으로 자치경찰을 두고, 자치경찰이 지역 치안·경비·정보와 더불어 성폭력 가정폭력 등 일부 수사도 맡는 체제다. 행정안전부 소속의 국가경찰은 자치경찰이 맡지 않는 일반수사와 국가 치안·경비·정보, 대공수사를 담당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인력과 예산, 권한 배분에 대한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실질적 분권이 이뤄지려면 현 국가경찰의 기능과 조직을 자치경찰과 충분히 나눠 가져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셈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일선 경찰서와 지구대·파출소는 국가경찰 소속으로 두되 인력과 예산의 일부는 자치경찰에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비율은 결정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반범죄 수사권이 없어 ‘무늬만 자치경찰’이란 비판을 받았던 제주자치경찰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2006년 도입된 제주자치경찰은 수사권이 제한되고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문제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 왔다. 이들은 제주특별법에서 정한 환경·산림·공중위생 등 22개 분야 69개 법률 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사법경찰로서 수사할 수 있다. 단순한 음주운전이나 폭행조차 직접 수사할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를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시와 한국정책학회가 제주자치경찰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72%가 ‘무늬만 자치경찰’이라는 평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국가경찰이 전담하고 있는 일반범죄에 대해 자치경찰도 수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89%였다.
제주자치경찰단의 다른 관계자는 “‘네가 뭔데 단속하느냐’ ‘경찰도 아니잖아’ 등의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다”며 “하다못해 업무 수행 중 시민에게 폭행당해도 직접 수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김성호 지방자치법학회 부회장도 “자치경찰이 민생치안이나 경비, 교통만을 맡는다 해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선 일반범죄 수사권이 필요하다”며 “제주자치경찰은 분권이란 취지를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전국적 자치경찰제 도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한해 자치경찰에 수사권을 주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수사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수사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인력과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지자체의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주도 전체를 관할하는 제주자치경찰단의 인력은 130명뿐이고, 예산은 지난해 기준 127억원이다. 설문조사에서 제주자치경찰 중 95%는 인력 상황이, 81%는 재정이 열악하다고 응답했다.
이영남 한국자치경찰학회장(가톨릭관동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은 “청와대 발표 내용을 보면 국가경찰의 인력과 예산을 얼마나 떼어줄 건지에 대한 내용이 빠졌다”며 “결국 수사권의 실질적 이양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자치경찰을 일반사법경찰로 전환해 일반범죄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미국에선 대부분 범죄의 수사를 자치경찰이 맡고 강력이나 광역 사건 등 자치경찰이 감당하기 까다로운 범죄만 연방수사국(FBI)에 넘긴다. 영국과 일본 등 자치경찰제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황문규 중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일반 수사권을 주지 않으면 결국 제주자치경찰처럼 비효율적인 조직이 하나 더 느는 셈”이라며 “대부분의 수사는 국가경찰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공룡경찰을 막겠다는 청와대의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무늬만 자치경찰’ 제주 실패 반복해선 안 된다
입력 2018-01-20 05:00